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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문학가, 이청준(李淸俊) 생가

문학가, 이청준(李淸俊) 생가. 생가(生家)는 일자( - )형 집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다. *주소: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1길 9-3 (진목리 475) 이청준(李淸俊, 1939 ~ 2008) 1939년 장흥의 회진면(구 대덕면)에서 부친 이남석씨와 모친 김금례씨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동네에서 모범생이자 수재로 유명한 아이였다. 중학교를 광주로 가면서 이곳을 떠나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서 작가가 되었다 한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관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적절한 기법과 역량을 보여 주었다. 1979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쓴 등은 이 마..

발길을 따라 2024.03.08

전남 장흥. 선학동 마을, 영화 / 천년학 세트장.

장흥. 천년학 세트장. *주소: 전남 장흥군 회진면 천년학길 60 (회진리 1740-1) 선학동 마을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촬영 배경지이었다. '천년학'은 소설가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촬영세트장 앞에 세워진 선학동 표지석. 이청준 소설문학길 안내판.. 영화와 영상 만남 / 소설: 선학동 나그네. 영화: 천년학. 이청준 님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선학동에 도착한 나그네는 기대했던 선학의 모습을 못 보게 되자 실망한다. 하룻밤을 묵기 위해 주막을 찾은 나그네는 집주인 사내에게서 학을 다시 날아오르게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30여 년 전 소리꾼 노인이 어린 아들과 눈먼 딸과 함께 주막에 머무르며 딸아이에게 소리를 가르치다 ..

발길을 따라 2024.03.06

전남 강진. 무위사(無爲寺) 극락보전, 국보 제13호.

월출산 무위사 일주문. *주소: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지난 2월 4일에 무위사 홍매화를 촬영하여 올린 분이 있어서 필자는 2월 11일에 무위사를 찾았더니 현장의 홍매화는 소문과 달랐다. 무위사(無爲寺)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사찰(절)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무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의 말사로,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 남쪽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617년(신라 진평왕39)에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한 절집으로 처음의 이름은 관음사(觀音寺)였다. 875년(헌강왕1)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갈옥사(葛屋寺)로 중창했고,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과 후원을 받아 '905년(신라 효광왕9)에 가지산문계의 선각국..

한국의 사찰 2024.03.04

전남 영암. 나주나씨. 보본당(報本堂) 나두생(羅斗生) 재실

보본당(報本堂) 저 앞에 보본당 건물이 보이며 좌측 언덕은 나주나씨의 묘역이다.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농촌길 103. 보본당(報本堂)은 나주나씨(羅州羅氏) 나두생(羅斗生)의 재실이다. 나두생의 자는 자현(子賢), 호는 제월당(霽月堂)이며 참판에 추증(追贈)되었다. 나두생은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나주 반남에서 영암 적진방 나포촌[현, 금농촌]으로 이거하여, 나포정을 짓고 강학 교류에 힘썼다. 뒤에 후손들이 나두생을 기리고자 묘소 곁에 재실 보본당을 지었다. 보본당은 덕진면 소재지에서 서쪽 6㎞ 거리의 덕진면 용산리 3구 금농촌(錦農村)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의 북쪽 언저리에 있다. 인근에 용동제 저수지가 있다. 1938년에 나두생의 묘소 아래에 공을 추모하려는 뜻에서 후손 나도현(羅..

발길을 따라 2024.03.01

전남 영암. 나주나씨. 의행비(羅州羅氏. 懿行碑)

이경우 처 나주나씨 의행비. 李絅雨 妻 羅州羅氏 懿行碑.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우정마을에 자리한 이경우 처 나주나씨 의행비를 소개하겠습니다. 의행비는 우정마을 앞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길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주소: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225-5.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열부 나주나씨의 행적비. 개설. 나주나씨(羅州羅氏)는 통정대부 나도현(羅燾炫)의 딸이자 경주이씨 이경우(李絅雨)의 부인이다. 조선 고종 代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다. 또한 순한 말과 바른 행동으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한다. 건립 경위. 영암지역 유림들이 나주나씨의 행동을 기리기 위해 1889년 4월에 ‘이경우 처..

발길을 따라 2024.02.28

전남 나주. 나주나씨. 삼강문(羅州羅氏. 三綱門)

나주나씨 삼강문(羅州羅氏 三綱門) *주소: 전남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265-6 (중대길 3) 나주에는 나주나씨 삼강문이 2군데가 있다. 하나는 나주시내 남내동 15-1의 중앙로 변에 삼강문이 있고 또 하나는 반남면 대안리에 삼강문이 있다. 그러나, 정려 내용은 대안리 삼강문과 나주시 남내동에 있는 삼강문이 동일하다. 이곳에서는 반남면 대안리 중대마을에 있는 삼강문을 소개하려 한다. 삼강문의 집안인 나주나씨의 순소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명승지를 찾던 중 무안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암군 시종면 남해포에 정각을 짓고 이곳에 터를 잡아 중대마을이 소속된 대안리 일대에 자손들이 퍼져 살고 있다. 중대마을 입구에 단층으로 지어진 삼강문은 1816년에 건립되었는데, 나주나씨의 2忠 2孝 4烈의 뜻을 기리고자..

발길을 따라 2024.02.26

전남 나주. 나주나씨. 삼효문(羅州羅氏. 三孝門)

나주나씨 삼효문 (羅州羅氏 三孝門) *주소: 전남 나주시 세지면 죽동리 65-9.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죽동리 죽동마을에 있는 정려각으로, 효자 나득륜 등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조선시대의 효자 나득륜(羅得綸)과 나학신(羅學愼), 효부 풍산홍씨 등 효행으로 나라에서 정려를 받은 나주나씨 가문 3인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에 나학신이 정려를 받은 이후 건립되었으며, 1921년 중수되었다. 정면 2칸·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1813년에 기록된 '효자 조봉대부 동몽교관 나주 나득륜지려' 등 6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효문 일각문. 출입문이 잠겨있어 정려각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나주나씨 삼효..

발길을 따라 2024.02.23

전남 나주. 나주나씨. 반계정(潘溪亭) 나덕현(羅德顯) 배향

반계정(潘溪亭)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성내마을에 있는 나주나씨 문중의 정자이다. *주소: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785-1번지. 이 정자는 조선 중기에 정유왜란 피난 때 이곳에서 초막을 짓고 지낸 은둔소로 사용하였다. 세월이 흘러 퇴락하자 나주나씨 후손들이 1905년 중건하였다. 정자는 단층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재실형(齋室形) 정자로, 내부에 나덕현(羅德顯)의 후손 나공한(羅珙漢), 나도기(羅燾琪) 등 10여 명이 쓴 시(詩)가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당시 백양동(白羊洞)에 정착한 입향조 나주나씨(羅州羅氏)의 반계(潘溪) 나덕현(羅德顯: 1565~1625)은 나주에 살다가 처가인 이 마을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나주나씨는 나주시에서 사마시 합격자..

발길을 따라 2024.02.21

전남 나주. 나주나씨. 삼강문(三綱門). 전남 문화재자료 제91호.

나주나씨 삼강문 (羅州羅氏 三綱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1호. *소재지: 전남 나주시 남내동 15-1. 나주나씨의 나사침(1526∼1596)을 비롯하여 3대에 걸친 충신 두 분과 효자 두 분. 그리고 열녀 네 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정려문이다. 나사침은 16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로 봉양하여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손자인 나득소(1607∼1640)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아버지인 나덕현이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르고 효(孝)를 다해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효자로 정려되었다. 나사침의 큰아들인 나덕명(1551∼1610)과 여섯 째 아들인 나덕헌(羅德憲 1573~1640)은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종성지방에 유배되어..

문화재 탐방 2024.02.19

전남 나주. 나주나씨. 나동환 부인, 진주정씨 의열각(義烈閣)

의열각(義烈閣)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나주나씨 나동환의 부인 진주정씨 정려. *본 의열각은 본시 나주시 과원동 121-10번지. 나주목문화관 앞에 자리하고 있던 정각을 나주나씨 금호사 앞으로 이설해 왔다. *주소: 전남 나주시 남내동 4-2번지. 나주나씨 금호회관 옆. 나주는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할 당시, 수성군을 조직하여 농민군의 공격에 저항했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토벌하기 위한 호남초토영(湖南招討營)이 설치되어 강진, 장흥, 영암, 무안까지 농민군을 진압하였다. 당시, 나동환은 동학농민운동 접주로 참여하였다. 그가 관군과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아내 진주정씨의 친정인 함평군의 다라실이라는 곳으로 피신했을 때 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남편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는..

발길을 따라 2024.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