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장흥. 전남 문화재자료 제288호. 김응원 각왜비

백산(栢山) 2022. 3. 30. 09:00

장흥. 김응원 각왜비((金應遠 卻倭碑)
 
전남 문화재자료 제288호.
 
 
*소재지: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장리 602-1(금안마을)

 
 
-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 김응원 공적 기린 행적비.
- 의병활동, 향촌사회 생활 알 수 있는 중요 기록 유산.
 
장흥읍 평장리 금안마을에 자리한 각왜비(卻倭碑)는 정유재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던 오우당(五友堂) 김응원(金應遠, 1569~1638)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2018년 8월 2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88호 지정됐다.
 
김응원은 장흥읍 평장리 2구 금안마을에서 선조 3년(1569, 己巳)에 경주 후인 교리 김희련(金希鍊, 號: 石靑)과 청주 한씨와의 사이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처음에 응전(應全)이라 하다가 응원(應遠)이라 하였다. 號는 오우당(五友堂), 字는 이구(而久), 본관은 경주이다.
 
5세에 부친상을 당하니 슬퍼하기를 어른과 같이 하고 모부인을 섬김에 20년을 하루 같이 하여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고 시탕(侍湯)을 지성을 다하였다.
 
1883년(고종 20년) 만들어진 의병장 행적비로 국난 극복의 원동력인 의병 활동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 기록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당시 향촌사회 생활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시기에 활약한 김응원은 형 김응규(應圭)공과 함께 1595년(선조 28) 의병을 모아 도고동(道高洞, 금안마을 뒷산)에서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왜구가 쳐들어오자 수천 개의 등(燈)을 도고동 뒷산에 매달고 마을사람을 매복시켜, 왜군이 쳐들어오자 일제히 큰 함성을 지르게 했다.
 
많은 수의 의병이 매복해 있는 것처럼 꾸미자 왜군은 달아나 버렸다고 전한다.
 
이 같이 용맹한 의병 행적을 기려 후대에 위문덕(1704-1784)이 행장을 지었고, '호남절의록'에도 올라 있다.
 
 
- 웹사이트 -
 
 

김응원 각왜비 전경.
 

김응원 각왜비 안내문.

 

김응원 각왜비 비각.
 

김응원 각왜비.
 

김응원 각왜비 상단.
 

명성균생원 행참봉 경주김공 각왜비.
明成均生員 行參奉 慶州金公 卻倭碑.
 

측면에서 본 김응원 각왜비.
 
 
 
*다녀온 날: 2019년 0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