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 향토문화유산 제4호. 충효사(忠孝祠)
충효사(忠孝祠)
농촌 마을 가운데 있어 농번기에는 농산물이나 농기구가 충효사 삼문 앞에
방치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였다.
아래 사진은 지난 2018년 6월 10일에 다녀 가면서 촬영했던 그림입니다.
충효사(忠孝祠)
2018년 6월 10일에 다녀갈 때 모습.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된 충효사 삼문 앞은
농업용구와 쓰레기로 볼성사납게 되어 있었다.
무안군 향토문화유산 제4호.
(지정일: 2009년 4월 16일 / 창건연대: 1906년 / 중건연대: 1981년)
*주소: 전남 무안군 운남면 저동길 57-14 (연리 539-1)
충효사는 광무 10년(1906) 운남면에 거주하는 김(金), 기(奇), 정(鄭), 이(李)씨의 4성 6인이 선대의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사우이다.
김숭조와 임난공신인 충렬공 정기인 등 충신과 기응세, 김상경, 정시철, 김필홍, 김성태, 이이주 등 일곱 명의 효자를 배향하고 있다.
9인의 단비를 세운 후 1917년과 1921년 개수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1년 사우로 개축한 것이다.
현재 아홉 분의 단비는 1981년 사우가 세워질 때 매몰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으며, 사우의 정면 좌측에는 1916년 세워진 충효단비가 있다.
크기/수량/규모 : 사당 1동 (향토문화유산)
- 무안군청 -
정기린(鄭麒麟, 1570~1593)은
함평군 수호리 출신의 무관으로 하동정씨 정만주(鄭萬珠)의 아들이다. 1585년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좌부장(左部將)을 거쳐 사복내승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발발 후 고경명의 격문을 받고 의병을 모집하여 고경명의 막하로 들어갔다. 고경명의 의병부대와 함께 금산으로 갔지만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의병들이라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해낼 수 없어 참패하고 거의 전원이 전사했다.
이때 살아남은 정기린은 순국한 의병들의 영령에 제사를 드린 후 의병을 다시 불러모았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정기린은 이들을 이끌고 김천일의 진영으로 들어가 활동했다.
그가 백의대검(白衣帶劍), 기백마(騎白馬), 건백기(建白旗) 삼백(三白)으로 호국의 뜻을 나타내니 선조 임금은 ‘백자장(白字將)’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이 함락될 때 탈출에 성공했으나 나중에 순절했다. 뒤에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되었으며, 1649년(인조 27)에 정려와 함께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Daum백과]
충효사.
충효사 현판.
충효단비명.
안쪽에서 본 충효사 삼문.
*2023년 0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