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함평이씨. 타루비(墮淚碑)

함평이씨. 타루비(墮淚碑)
*주소: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351-4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이유(李瑜)와 그의 처 부령김씨(扶寧金氏)를 기리기 위하여 조선 후기에 세운 비(碑).
이유(李瑜)[1545~1597]의 본관은 함평으로, 字는 덕형(德馨), 號는 도곡(桃谷)이다.
본래 영광에서 태어났지만 부인 부령김씨(扶寧金氏)를 따라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으로 이거하였다. 당시 부안현감의 후원으로 초가강소(草家講所)를 짓고 은거하며 경사를 강론하고 학문에 힘썼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수많은 일본군이 부안에 침입하자 부안에서 후진을 양성하던 이유(李瑜)는 의병을 모아 죽창을 들고 부안군 상서면 청등에서 유정재로 가는 길목에서 3일 동안 치열하게 싸워 적을 물리쳤다. 이후 다시 침입한 적들과 싸우다 9월 19일 순국하였다.
이에 부인 부령김씨가 남편 이유(李瑜)를 대신해서 의병을 지휘하다 또한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왜적들은 이유(李瑜)의 집까지 쳐들어가서 집과 귀중한 문서 등을 태워버렸다.
적군이 물러간 뒤에도 부부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옷가지와 신발 등을 수습하여 초혼장(招魂葬)으로 장사를 지내니 부부의 슬픈 참사에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정유재란이 끝난 뒤, 이유(李瑜)와 부령김씨의 넋을 위로하고 부부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청등 고갯마루에 타루비(墮淚碑)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부서지고 없어진 것을 1981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도로변에 다시 건립하였다.
‘타루(墮淚)’는 중국 진나라의 양양 사람들은 수령인 양우(洋祐)를 생각하면서, 그 비(碑)를 바라다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고사(古史)에서 인용한 것이다.
양우(洋祐)라는 사람이 중국 양양 지방의 수령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그 은혜를 잊지 못했는데, 그가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의 문을 닫고 슬퍼하며 조그만 비석을 세웠다는 고사에서 ‘타루[눈물 흘리다]’를 따와 비(碑)를 세웠다.
타루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화강암의 비좌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결구한 상태이다.
석비(石碑)의 앞면에 큰 글자로 ‘타루비(墮淚碑)’ 3자(字)가 새겨져 있다.
타루비의 비문(碑文)은 항일 운동가 송천 고예진(高禮鎭)[1857~1952]이 지었다. 정유재란 당시 순절한 이유(李瑜)와 부령김씨, 의병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 디지털부안문화대전 -

타루비(墮淚碑) 안내판.

타루비 입구는 철제문으로 되어 있으나 출입이 가능하다.

타루비(墮淚碑)

타루비(墮淚碑)

타루비(墮淚碑)

타루비(墮淚碑)

타루비(墮淚碑) 측면.

타루비(墮淚碑) 뒷면.

타루비 측면.

타루비와 소나무.

타루비(墮淚碑)

타루비 전경.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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