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해남. 정유재란 만의지사 만의총(萬義塚)

백산(栢山) 2021. 2. 22. 09:00

해남 옥천 만의총(萬義塚)

 

전라남도 기념물 제248호

 

 


*소재지: 전남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 500-1 일원.

 

 

옥천면 성산대교들에 자리하고 있는 만의총(萬義塚)은 본래는 삼국시대 지방 호족의 묘역이었다. 이곳에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성산대교들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3만 명의 일본군을 맞아 싸우다가 순절한 1만 명의 의병과 백성들의 시신을 묻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성산대교들 전투를 뒷받침하는 문헌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의해 전투의 실상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시점은 명량해전(1597. 09. 16.) 직전이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지역을 점령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정유년에 대군을 편성해 다시 침공해 왔으며 먼저 전라도 지역을 공략했다. 일본군 우군(右軍)은 전주읍성을, 좌군(左軍)과 수군(水軍)은 남원읍성으로 진격했다.

 

전라병사 이복남과 명나라 부총병 양호(楊鎬)가 이끄는 4천 명의 병사와 6천 명의 주민들은 남원읍성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8월 16일 읍성은 함락되고 병사들은 전멸했다.

 

남원읍성과 전주읍성을 차례로 함락시킨 고니시 유키나가는 칠천량해전 이후 사실상 무력화된 조선수군을 완전히 궤멸시키고 전라도를 장악하기 위해 병력을 북쪽과 서쪽 양쪽에서 동시에 진군시켜 해남 우수영으로 향했다.

 

남원읍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그 중 일부 병력이 수군이었는데 그들은 경상남도 하동으로 내려와 함선을 타고 서진하여 조선수군을 쫓았고, 지상군은 우수영이 있는 해남을 향해 남진했다.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조선수군의 맥을 끊기 위함이다.

 

그러나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을 궤멸시킨 뒤 300여 척의 전함을 이끌고 추격해 온 일본수군은 명량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함대에게 크게 패했다.

 

 

- 웹사이트 -

 

 

만의총 1호분.

 

 

정유재란 만의지사총 비석.

 

 

만의총 비석.

 

 

해남 옥천 고분군 안내판.

 

 

만의총 1호분.

 

 

만의총 1호분.

 

 

만의총 1호분 뒤편에 마련된 정자.

 

 

이정표를 따라 2호분으로 향했다.

 

 

만의총 2호분.

 

 

만의총 2호분.

 

 

만의총 2호분.

 

 

만의총 2호분.

 

 

<후기> 3호분을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웁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202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