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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 광산김씨 효열문(光山金氏 孝烈門)

광산김씨 효열문(光山金氏 孝烈門)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노동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93. 효열문 문곽은 근래에 세웠는지 대리석으로 하고 담장은 적벽돌로 둘러두었다. 효열문(孝烈門) 철문은 닫혀 있고 낮은 담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어서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담 너머로 촬영은 가능하였다. 건물 외부 전면에 '광산김씨 효열문'이라는 현판과 두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편액이나란히 걸려 있고, 내부에 광산김씨 효자비와 나주나씨 효열비 등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광산김씨 효열문 현판. 17세기 중엽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효열문(孝烈門)이다. 지역 유림들이 광산김씨 김응기(金應期)의 효행과 나주나씨(羅州羅氏)의 열행(烈行)을나라에 천거하자 인조와 ..

발길을 따라 05:00:43

쌍화도의 사랑이야기.

- 출처 / 웹사이트 - 쌍화도의 사랑이야기. 충청남도 보령군 소성리 마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음력으로 삼월 삼짓날이 되면 어부들이 고기 풍년을 비는 풍어제를 지내오고 있다. 이 마을 앞 바다에는 쌍화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는 두 개의 섬이 서로 맞대고 쳐다보고 있는 듯 한데, 여기에는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의 내력을 살펴보면, 때는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 낼 무렵에 한양에는 김도령이란 사내와 연이낭자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청춘남녀는 서로가 진실로 사랑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사람의 아버지사이는 원수처럼 지냈던 것이다. 이러한 처지는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크나큰 걸림돌이었으나, 그래도 두 사람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

전설과 설화 2026.09.22

광주광역시 광산. 제주양씨 삼강문(梁氏 三綱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

광주 광산구. 양씨 삼강문(梁氏 三綱門) 전경.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뫼안길 5-8 (박호동 산 131-1) 양씨 삼강문(일각문) 양씨 삼강문 현판. 현판은 1803년에 이헌중이 썼다고 한다. 양씨 삼강문 안내문. 양씨 삼강문(梁氏三綱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을비롯한 충신과 효자. 절개를 지킨 열녀. 절부 등 7명을 1635년 인조의 특명에 따라 모시고 있다. 삼강문은 이들이 생전에 살았던 박뫼마을 앞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삼세구정려(三世九旌閭) 전경. 양씨 삼강문(梁氏 三綱門)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으로 양반의 일가가 풍비박산이 나는가슴 아픈 사연이 깃 든 곳이다. 이들은 학포 양팽손..

문화재 탐방 2026.09.21

실록으로 본 조선의 기인들 (홍유손, 어우동)

- 출처 / 웹사이트 - 實錄으로 본 朝鮮의 奇人들 (홍유손, 어우동) 홍유손(洪裕孫, 1431-1529) 본관: 남양.호(號)는 여경(餘慶), 소총(篠䕺), 광진자(狂眞子) 76세에 처음 장가들고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洪裕孫) 조선시대 하면 사내아이는 보통 10세를 넘으면 장가를 가게 되는데,무려 76세의 죽을 나이에 첫 장가를 가고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인공은 홍유손(洪裕孫)그는 소위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속세를 떠난 청담파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제주도에 유배되고 노비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76세에 처음으로 처를 맞이하여아들 하나를 얻어 홍지성(洪至誠)이라 이름하였다. 같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자 생육신(生六臣)이었..

기인열전 편 2026.09.19

광주광역시 광산. 용아 박용철 생가. 광주 기념물 제13호.

용아 박용철 생가. 광주 기념물 제13호. 광주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 (소촌동 363-1) 기념물 제13호. 용아 생가 표지석. 시인 용아 박용철의 생가는 1986년에 광주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는 당시의 광산군 송정읍 솔머리 마을에서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광주 공립보통학교를 다니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며 졸업하고 귀향하여 문학활동에 전념했다. 고교시절에는 지하신문 목탁을 발간하여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고취시켰고 이곳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개화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정신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다 34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국시단의 서정시 발전에 선구자 충주박씨로 박상(朴祥)과 박순(朴淳)의 후손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19..

문화재 탐방 2026.09.18

김삿갓 시(詩) (43)

김삿갓 시(詩) (43) 내 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 영립(詠笠)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야담과 재담 2026.09.17

광주광역시 광산. 월봉서원(月峰書院)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월봉서원 전경. 월봉서원 & 빙월당(氷月堂)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광주 광산구 광곡길 133 (광산동) 월봉서원(月峰書院)옛날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월봉서원(月峰書院)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본관 幸州)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년(선조 11년)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 되었다가 1941년 현재 위치에 새로 지었다.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 건립에 착수하여 1981년에 준공하였다. * 고봉 기대승 선생에 대한 자세한 부분은 아래 하단에 게재하였습니다. 망천문(望川門) 외삼문. 월봉서원 안내판. 빙월당 안내판. 빙월당(氷月堂..

문화재 탐방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