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257

전남 나주. 구, 나주역

구, 나주역 전경.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나주역사. 光州學生獨立運動震源地 羅州驛舍. 전라남도기념물 제 183호. 2000년 12월 29일 지정. 전남 나주시 죽림길 20. 1913년 7월 1일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된 건물로,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과 조선인 남학생의 편싸움을 발단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 나주역사 안내문. 구, 나주역사(羅州驛舍: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 나주역은 11.3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간의 다툼이 그 발단이 되었다. 일명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이다. 통학기차 안에서 후쿠다와 다나카 등 일본인 중학생들이 조선인 여..

문화재 탐방 2016.09.09

전남 나주. 구, 나주경찰서. 등록문화재 제34호.

나주 구, 경찰서 전경. 등록문화재 제34호. 전남 나주시 남고문로 65 (금성동) 1910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본이 주권을 빼앗은 1910년에 일본이 세운 관공서 건물이다.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2층 건물로 창문과 출입구 등 건물의 외관상 중요한 부분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으며, 수직성을 강조한 단순한 형태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행했던 곳으로, 당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등록문화재 제34호 구 나주경찰서. 대한만국 근대문화유산 문화재청 표식. 우측에서 본 모습. 현재는 각종 시민단체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사) 나주사랑시민회 사무실. 좌측에서 본 모습. 경찰서 건물 내부. 현재 건물 내부는 시민단체들의 사무..

문화재 탐방 2016.09.08

전남 보성. 벌교 홍교(虹橋)

보성 벌교 홍교(寶城 筏橋 虹橋) 보물 제304호.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154-1번지.  벌교 보성여관과 벌교 금융조합을 둘러보고 벌교 홍교로 향했는데, 벌교 금융조합에서 벌교 홍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는 거리였다. 차를 주차하고 카메라를 챙기니 옆에서 보고있던 노인? 한 분이 홍교 다리 밑에 가서 용머리를 찍어야 기념이 된다며 손아랫사람에게 대하듯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이로 따진다면 그 분이나 저나 별반 다름이 없을 듯 하지만 멀리서 온 듯한 손님?에게 각별한 예우로 생각하니 오히려 고맙기 그지 없었다. 그래 그 분의 뜻을 쫓아 굳이 다리 아래쪽으로 내려가 용머리를 찍어 기념?으로 남겼다.   홍교(虹橋)란? 다리 밑이 무지개같이 반원형이 되도록 쌓은 다리를 말하며, 아치교· 홍예교· ..

문화재 탐방 2015.11.30

전남 보성. 舊 벌교금융조합(보성농민상담소)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 전경. *정문 입구 위에 한문으로 筏橋 金融組合이라고 선명히 세겨져 있다. 등록문화재 제226호.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39-1.  벌교에는 태백산맥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문학의 거리에는 그 유명한 보성여관 건물을 조금 지나치면 과거의 벌교 금융조합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2층으로 1919년에 건립된 르네상스식 바탕에 절충주의적 양식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는 금융조합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보성군농업기술센터 벌교농업인상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금융조합(金融組合) 금융조합은 1906년 은행조례 공포로 설립된 농공은행이나 지방 창고로는 농촌 금융 소통을 못하게 되고 농촌금융을 전담할 새로운 금융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 되면서 1907년 ..

문화재 탐방 2015.11.28

전남 보성. 舊 보성여관(남도여관)

舊 보성여관(남도여관) 전경. 등록문화재 제132호.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소설 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한 일식 주택 형식의 여관 건물로 지역적 특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건축물임-   1935년     강활암 건립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 지정 2008년     문화재청 보성여관 매입 2008년     문화유산국민신탁 등록문화재관리단체 지정 2009년~2011년     해체 보수공사 2012년     개관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속 '남도여관'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보성여관'은 소설에서처럼 해방 이후부터 한국 전쟁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기억하는 근현대 삶의 현장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억의 장소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 ..

문화재 탐방 2015.11.26

전남 나주. 남평역(南平驛) 등록문화재 제299호.

나주 구, 남평역 전경. 등록문화재 제299호. 전남 나주시 남평읍 동촌로 313, 외 (광촌리) 남평역은 1동, 1층 규모로 건축면적 90.6㎡, 철로길이 좌·우 각각 150m이다. 남평역은 경전선로로 1930년 12월 25일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1948년 5월 3일 보통역으로 승격하였으며, 1950년 2월 7일 여순반란사건으로 역사(驛舍)가 소실되어 1956년 7월 7월 17일 신축되었다. 6.25동란과 1.4후퇴 때에 인민군의 장악과 전투가 있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역사(驛舍)로서 기능이 중단되어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나주 남평역 안내 표지판. 남평역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건널목. 휴일날 레일바이크를 즐기는 젊은 부부와 아이. 역 앞 마당에 누가 관리하는지 장독..

문화재 탐방 2015.06.26

전남 영암. 김극희장군 사당 충효사

충효사 입로석. 국가지정 문화재 제209호.  전남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산2.    충효사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조성된 김극희 장군의 묘소와 유물을 간직한 곳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었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도와 한산도 대첩과 명랑대첩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순국하신 김극희(金克禧)장군(1532~1598)과 그의 아들 김함(金涵)장군의 사우와 묘역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 참조 / 영암군 홈페이지 -   홍살문.   정의문(正義門) 외삼문.   충효사 안내문.   행원당(行源堂)   성인문(成仁門) 내삼문.   충효사 묘정비.   충효사 사당.   유물전시관.   충효사 권역 안내도.   김극희 장군 묘소.   김극희 장군 묘소에서 내려다 본 영암 학산면 들녘. 아래쪽으로 ..

문화재 탐방 2015.02.23

전남 영암. 김완장군 부조묘 및 구고사

구고사 통로입석. 전라남도 기념물 제49호.  전남 영암군 서호면 화소길 20 (화송리)   이곳은 조선시대(朝鮮時代) 명장(名將)인 김완(金完)(1577∼1635)장군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祠堂)이다. 김완장군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이복남(李福男) 장군 휘하에서 용맹을 떨쳤고, 그 후 광해군(光海君) 7년(1615) 과거에 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高山鎭節制使)를 거쳐 창성방어사(昌城防禦使)로 있을 때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는 데 큰공을 세웠다. 장군은 그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三等)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封)해졌으며 뒤에 황해도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를 거쳐 사후에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구고사..

문화재 탐방 2015.02.17

전남 영암. 전씨 충효문(忠孝門)

전씨 충효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71호.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서호로 341 (장천리)     전씨 충효문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큰공을 세운 전몽성(1561∼1597) 장군 형제의 충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전몽성은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왜구를 무찔러 큰공을 세웠다. 정유재란(1597) 때 동생 전몽진 등과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르다가 해암포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동생 전몽태 장군은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 큰공을 세웠다. 후에 이들 3형제의 공적을 표창하기 위해 고종 24년(1887)에 이 충효문을 건립케 하여 ..

문화재 탐방 2015.02.06

전남 장흥. 만수사(萬壽祠)

만수사 전경.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1호.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만년리)  만수사(萬壽祠)는 고려시대의 유학자 문성공(文成公) 회헌(晦軒) 안향(安珦, 1243∼1306)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지은 사당으로 안원형· 안면· 안정생· 주세붕· 안중목을 배향하였으며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를 별도로 마련하여 놓았다. 안향(安珦)은 고려시대 유학자로 고려 원종 1년(1260)에 문과에 합격한 후 교서당, 국자사업, 도첨의중찬 등 많은 벼슬을 지냈으며, 후진양성과 유학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안원형은 밀직사, 평장사 등을 지낸 인물이며 안면은 사간원정언, 정당문학 등을 지냈고 안정생은 직제학을 지낸 인물이다. 만수사, 내삼문, 강당, 외삼문, 해동사 ..

문화재 탐방 201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