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문예계

목포 문학관 <차범석 관2>

백산(栢山) 2009. 11. 24. 11:05

 

차범석 像.

 

 

차범석 님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密酒)>가 가작 입선되고, 1956년 같은 신문에 <귀향>이 당선됨으로써 등단한 후 창작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대에 6.25전쟁을 겪은 전후문학세대로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의식이 강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특히 전쟁의 상처로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린 <불모지>(1957)와 이념의 허구성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산불>(1962)은 6.25의 비극을 부각시키고 반전의식(反戰意識)을 일깨운 전후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성난 기계>(1957). <청기와 집>(1964). <열대어>(1965). <장미의 성>(1968). <꿈 하늘>(1987). <들리니? 풀이 자라는 소리>(1994).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2001) 등을 발표했었다.

 

극작가로서의 작품활동 외에도 1956년 김경옥(金京鈺), 최창봉(崔彰鳳), 오사량(吳史良) 등과 <제작극회>를 창단해 小劇場 운동을 주도했으며, MBC 창립에 참여해 방송극 창작에도 관여했다.

 

1963년에는 김유성(金有聲). 임희재(任熙宰) 등과 극단 <山河>를 창단하고 대표(1963∼1983)로 활동해 한국의 현대극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으며, 또한 <사형인>(1956). <말괄량이 길들이기>(1964). <세일즈맨의 죽음>(1975). <도미부인>(1984). <고려애사>(1990) 등의 구성공연을 맡아 극연출가로서도 활동했으며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이밖에 청주대학교(1983∼1987)와 서울예술전문대학(1989∼1994) 등에서 강의했으며, 2002년 이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경희대학교 정보문화원 객원교수로 활동한바 있다.

 

 

자선 대표작 실(좌).

 

 

 

자선 대표작 실(중)

 

 

 

자선 대표작 실 (우)

 

 

 

연극 공연 과정1.

 

 

 

연극 공연 과정2.

 

 

 

기념 사업 전시실.

 

 

 

기념 사업 전시실 (우)

 

 

 

작고 후에 추서된 대한민국 금관 문화 훈장.

 

 

 

목포 시민의 상.

목포시장 정종득 (2005년)

 

 

 

감사패.

대불대학교 총장 의학박사 이경수.(2002년)

 

 

 

차범석과 방송.

방송에 관련된 자료.

 

 

 

생활 유품실.

 

 

 

생활 유품.

 

 

 

생활 유품.

 

 

 

생활 유품.

 

*본문 중 일부는 웹사이트 및 <목포문학관>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글, 그림 / 이태원 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