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각 2

전남 나주. 나주임씨. 창계서원(滄溪書院) 창계공 임영(林泳) 사우

창계서원 전경. *주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41. 창계서원(滄溪書院)은 호남이 낳은 큰 학자 창계공(滄溪公) 휘(諱) 영(泳)의 사우(祠宇)이다. 나주임씨 20世 창계공 임영(林泳: 1649~1696)은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대사헌 등 청화(淸華)의 관직을 두루 거치기도 하였으나, 보다 학문에 뜻이 깊어 연구와 저술로 일생을 정진, 불후의 대업을 남긴 “일세의 참다운 선비, 백세의 본받을 스승”이었다. 공의 강학(講學)이 주로 이루어졌던 호남에서 공을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아 떨어진 학(學)을 잇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공의 고토(故土)인 회진에 창계서원이 함평고을에 수산사가 세워졌으며 1770년경 창계서원을 회진에서 신걸산 기슭으로 옮기니 지금의 영성각 터이다. 그 후 혼란(混..

발길을 따라 2024.01.22

전남 나주. 나주임씨. 창계서원(滄溪書院)

창계서원 전경. *주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41. 창계서원(滄溪書院)은 호남이 낳은 큰 학자 창계공(滄溪公) 휘(諱) 영(泳)의 사우(祠宇)이다. 나주임씨 20世 창계공은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대사헌 등 청화(淸華)의 관직을 두루 거치기도 하였으나, 보다 학문에 뜻이 깊어 연구와 저술로 일생을 정진, 불후의 대업을 남긴 “일세의 참다운 선비, 백세의 본받을 스승”이었다. 공의 강학(講學)이 주로 이루어졌던 호남에서 공을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아 떨어진 학(學)을 잇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공의 고토(故土)인 회진에 창계서원이 함평고을에 수산사가 세워졌으며 1770년경 창계서원을 회진에서 신걸산 기슭으로 옮기니 지금의 영성각 터이다. 그 후 혼란(混亂)과 전도(顚倒)의 역사를 겪으..

발길을 따라 201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