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해남. 김해김씨. 노송사(老松祠)

백산(栢山) 2022. 3. 14. 09:00

노송재(老松齋)와 노송사(老松祠) 전경.

 

 

해남 노송사 소장 고문서(海南 老松祠 所藏 古文書)

 

전남 문화재자료 제282호.

(2017.07.27)

 

 


*주소: 전남 해남군 산이면 업자길 18-26 (노송리 376)

 

 

 

 

○ 문화재명 : 해남 노송사 소장 고문서(海南 老松祠 所藏 古文書)
○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2017.07.27)
○ 소 재 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업자길 18-26 (노송리 376)
○ 수 량 : 286점(고문서 228건, 성책문서 58책)
○ 소유자/관리자 : 노송사

 


조선후기 문관인 김재일(金載一)과 김낙일(金洛一) 등이 관직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축적해둔 문서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하고 방대(고문서 228건, 성책문서 58책)하여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조선후기의 제도사와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연구 자료로 활용이 가능하고, 특히 언전(堰田)과 역참(驛站) 관련 문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 있음.

 


- 우리 지역 문화재 -

 

 

 

노송재 현판과 주련.

 

 

 

노송재 현판.

 

 

 

덕불고 현판과 주련.

 

 

 

매헌(梅軒) 김기손이 쓴 덕불고(德不孤)

 

 

 

노송사 묘정비.

 

 

 

노송사 유래비.

 

 

 

노송사 중건 사적비.

 

 

 

노송사 외삼문 창의사.

 

 

 

노송사 외삼문 창의사.

 

 

 

노송사 건물에 별도로 창의사 현판이 붙어 있다.

 

 

 

노송사(老松祠) 전경.

 

노송사는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촬영을 했다.

 

 

노송사(老松祠)

 

노송사(老松祠)는 김해김씨 삼현파의 후예로 주벽인 매헌 김기손을 비롯하여, 정유재란 시 노량해전에서 전몰한 제남 김선지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하려고 의병을 일으킨 강서 김안방, 지촌 김안우, 송은 김연지를 배향하기 위하여 1800년(정조 24년)에 창의사로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49년 중건하면서 노송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건물은 사우와 삼문, 노송재(강당)가 있고 비(碑)같은 노송사 묘정비가 있다.

 


김기손(1455~1492)은 성종조 때 알성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을 거쳐 이조좌랑에 이른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다.

 


김안방(1554~1638)은 중봉 조헌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벼슬이 집현전 교리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과 합세하여 왜적을 무찔렀고, 정유재란 때는 김성원, 백진남, 종제 김안우와 함께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명량대첩을 이루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김안우(1554~1664)는 정유재란 때 종형 안방과 함께 어선을 군선으로 가장하여 아군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한편 군수품을 조달하여 왜적을 격파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에도 창의하여 충절을 다 하였다.

 


김선지(1570~1597)는 안방의 장자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선조를 호종할 때 윤두수의 추천으로 곡포만호에 제수되었다.

 

좌부장을 거쳐 보성군수에 특배되었으나 부임도 못하고 노량해전에서 전몰하였다.

 


김연지(1577~1641)는 김안방의 차자이며 김선지의 아우로 일찍이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에 창의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호남의 의병장이 되어 청주까지 출전하였으나 화의가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 출처 / 오인교의 녹색건강 -

 

 

 

노송사 현판.

 

 

 

 

*다녀온 날: 2020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