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보성. 천안전씨. 충효사(忠孝祠)

백산(栢山) 2022. 3. 16. 09:00

보성. 충효사(忠孝祠) 전경.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영등리 442-4 (영등길 61)

 

 

 

 

충효사 입구 수의문(守義門)

 

 

 

충효사(忠孝祠)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어모장군(禦侮將軍) 전방삭(全方朔)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보성. 고흥. 순천. 광양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찌른 전방삭(全方朔, 1545~1598)은 명종 임금 때 장흥도호부사를 지낸 전윤부(全潤富)의 아들로 1545년 보성읍 우산리 택촌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활을 쏘고 말 타는 것을 즐겨했던 그는 학문과 전술연마로 1575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에 근무했으며, 1592년에는 훈련원 부정(종3품) 건공장군(建功將軍)이 되었다.

 

전방삭은 그 해 5월 8일 적진포해전 당시 이순신 막하에서 적군을 무수히 베었으며 크고 작은 해전에 참여했다. 보성 벌교포, 영등포, 장암포, 고흥 망저포 등지에서도 일본군 격퇴에 공을 세웠다.

 

일본군과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전방삭은 고향인 보성 택촌으로 가서 자택 곳간에 있던 쌀과 잡곡 100석을 꺼내 의병의 군량곡으로 헌납했다.

 

전방삭은 왕세자 광해군을 호종하여 전라북도 전주지역을 순회할 때 자신은 고향 땅에 잔류하여 의병을 모아 지리 지형을 이용하여 전술을 연마하고 조직전열을 가다듬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광해군이 이를 허락하자 그 소식은 그의 고향 보성에 전해졌고 청장년 300여 명이 뜻을 같이하여 전방삭 밑으로 모여들었다.

 

정유재란(1597)이 발발했을 때, 우키타 히데이에(宇喜田秀家)가 이끄는 1만 3천 명이 전라북도 남원읍성을 함락한 후 여세를 몰아 전라남도로 진입했다.

 

이때 전방삭 의병부대를 비롯하여 송대립. 최대성. 김덕방. 황원복 등이 지휘하는 의병들이 육지와 바다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워 전과를 올렸다.

 

전방삭과 의병들은 1598년 7월 12일 보성군수 전백옥과 함께 보성군 득량면 죽전벌판(오봉산과 군머리 사이)에서 우키타 히데이에의 대군을 맞아 용전분투했다. 이날 전방삭은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선조 임금은 1600년에 전방삭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선무원종공신에 녹훈하고 훈련원정 어모장군(정3품)으로 추증했다.

 

 

 

- 웹사이트 -

 

 

 

선조대왕

선무원종공신록권

어모장군 전방삭 하사비.

 

 

 

임란공신 어모장군 전방삭 유적비.

 

 

 

전방삭 유적비 측면.

 

 

 

충효사(忠孝祠) 사당.

 

사당에는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다녀온 날: 2017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