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보성. 진원박씨. 죽천 박광전. 산앙정(山仰亭)

백산(栢山) 2022. 11. 11. 06:00

산앙정(山仰亭)
 
 
 
*주소: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894 (죽산길 506-8)
 
 
 

산앙정(山仰亭)은 보성의 의병장 박광전이 1559년 대원사 들어가는 맑은 계곡 너머에 지은 정자(亭子)이다.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은 진원박씨 후인으로 보성 조양리 태생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호는 죽천(竹川)이다.
 

 
죽천 박광전(1526-1597)은 의병을 대표하는, 호남의병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연유로 죽천의 삶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광전의 삶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더욱 빛을 발휘한다. 일본이 쳐들어온 지 20일도 안 돼서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다. 일본군은 한양에 입성하고 함경도까지 북진했다. 당시 나이 67살이던 죽천은 성치 않는 몸이었지만, 의병을 일으키자는 격문을 쓴다.
 
박광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에도 72살의 몸으로 또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72살은, 지금의 100살 안팎으로 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병들었지만, 한줄기 목숨이 아직 붙어 있다"면서 의병장을 맡아 화순 동복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죽천 박광전은 자신의 출세보다도, 백성을 사랑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엔 맨 앞자리에 서서 싸웠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나아가서 아들과 손자, 증손자로 이어진 의병활동도 각별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였다. 호남의병의 표상이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애민·위민의 정신으로 의병으로 참여한 박광전의 삶은 아들, 손자, 증손자에까지 이어진다. 장남 박근효가 아버지 박광전과 함께 임란 의병으로 활동했다. 박근효의 아들 박춘수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활동을 했다. 또 다른 손자 박춘호는 사촌형인 박창수와 함께 의병을 모아 충청도 인접의 여산까지 달려갔다. 박광전의 증손자이자 박춘수의 아들인 박진형도 병자호란 때 안방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산앙정.
 

징검다리를 건너 산앙정으로 가게 되었다.
 

기념비와 산앙정.
 

기념비.
 

산앙정.
 

산앙정 현판은 .해관 윤용구(海觀 尹用求)가 썼다. 
 

우계(遇溪)
 
의봉 남언기(宜峯 南彦紀)가 계곡에 있는 구암(龜巖)에 써서 판각한 '우계(遇溪)'란 현판도 걸려 있다.
 

산앙정 상량문.
 

 

 

 

산앙정 대들보.
 

산앙정.
 

산앙정 앞 개울에 소량의 물이 흐르고 있다.
 
 
*이상으로 죽천 박광전 선생에 대한 스토리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녀온 날: 2022년 10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