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땅속에서 나온 돌종(石鐘)

백산(栢山) 2016. 1. 13. 09:53

 

 

 

땅속에서 나온 돌종(石鐘)

 

*原題: 孫順埋兒*

 

옛날 신라 모량리 마을에 손순(孫順)이라는 가난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성품이 온순하고 너그러운 이들 내외는 위로 늙은 어머니와 슬하에 어린 아들 한 명을 두었다. 비록 품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지만 내외의 효심은 지극했고 아들에 대한 사랑 또한 깊었다.

 

끼니를 구하러 집을 비우는 이들 부부는 자기들은 허리를 졸라매면서도 어머니 점심은 정성스레 차려 놓았다.

 

"어머니, 솥 안에 점심 담아 놓았으니 돌이 녀석 놀러나가거든 드세요."

 

"오냐, 알았다. 어서들 다녀오너라."

 

그러나, 노모는 대답뿐, 늘 어린 손자에게만 밥을 먹이고 자신은 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져 반나절 일을 채우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손순 내외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노모를 위해 아껴둔 찬밥덩이를 부엌에서 아들 돌이가 꺼내 먹고 있지 않은가.

 

"아니, 이 녀석아! 할머니 진지를 네가 먹으면 어떻게 해."

 

"할머니가 먹으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할머니 드시라고 권해야지 착한 손자지."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 날 밤. 손순은 자는 아내를 깨워 밖으로 나왔다.

 

"방에서 말씀하시지 않고..."

 

"어머님께서 깨실 까봐 그랬소."

 

"무슨 이야긴지 어서 해 보세요."

 

말을 할 듯, 할 듯 하면서도 한동안 머뭇거리던 손순은 입을 열었다.

 

"부인, 어머님의 남은 여생을 위해 돌이를 버립시다.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님은 한번 가시면 그만 아니오. 그 녀석이 어머님 음식을 늘 옆에서 축내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도리가 없구려."

 

"여보, 하지만 어린 자식이 너무 가엾잖아요. 부모 잘 만났으면 호강하고 귀여움을 독차지할 텐데..."

 

"부인, 나 역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소. 허나 다 전생의 업연이라 생각합시다. 어찌 생각하면 돌이가 살아서 굶주리며 고생하느니 일찍 죽으면 더 좋은 인연 받을지 누가 아오?"

 

내외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돌이를 업고 뒷산으로 올랐다. 잘 먹이지도 못한 어린 생명을 생매장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손순의 손은 무겁고 떨렸다. 얼마만큼 팠을까. 눈물을 흘리며 정신 없이 괭이질을 하던 손순은 괭이 끝에서 <쨍>하는 쇳소리를 들었다. 산목숨을 매장하려던 터라 가슴 조이던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흙을 파헤쳤다.

 

뭔지 분간키 어려운 둥근 돌 모양이 드러났다. 더 깊이 판 후 꺼내 보니 그것은 신비스런 모양의 석종이었다. 손순 부부는 생전 처음 보는 이 종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괭이 자루로 쳐보았다.

 

'윙-윙'

 

맑고 청아한 울림이 울려나오자 내외는 깜짝 놀랐다.

 

"그것 참 이상하다. 돌 종에서 쇠 종소리가 나다니..."

 

돌이를 업고 지켜보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이렇듯 이상한 물건을 얻게 됨은 필경 부처님께서 우리 돌이를 구해 주려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러니 돌이를 묻어선 안되겠어요. 돌 종을 갖고 어서 집으로 갑시다."

 

"당신 말대로 부처님 영험이 아니고는 이런 신비스런 돌종이 이런 곳에서 나올 리가 없지."

 

내외는 기쁜 마음으로 돌 종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마당 나뭇가지에 종을 매달고 다시 쳐보았다. 웅장하고 신비스런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손순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구경꾼들은 매일 몰려 왔고,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손순 부부의 효심을 칭송했다.

 

"암, 부처님이 무심치 않으신 게야."

 

"그렇지, 그토록 지극한 효심에 어찌 부처님께서 감응치 않으시겠나."

 

마을 사람들도 부처님의 거룩하신 영험에 감사하고 감격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울리는 아름다운 종소리는 대궐에까지 은은하게 들렸다.

 

"거 참으로 청아한 종소리로구나. 마치 하늘에서 울려오는 듯한 저 신비로운 종소리가 아무래도 보통 종소리 같지 않으니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아오도록 해라."

 

흥덕왕은 서쪽 들에서 조석으로 울려오는 종소리의 정체를 알아오도록 좌우에 명을 내렸다.

 

대궐 신하가 손순의 집에 가서 종을 보고 그 사연을 다 듣고는 임금님께 아뢰었다.

 

효심 지극한 손순 부부의 간절한 사연을 다 듣고 난 임금은 몹시 흐뭇해했다.

 

"옛날 중국 한나라에도 손순 같은 효자 곽거가 있어 어머니를 위해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구덩이를 파니 그곳에서 금솥이 나왔다더니, 손순의 경우 석종이 솟은 것은 필시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것이로구나. 특히 불보인 석종이 출현했으니 이 어찌 신라의 경사가 아니겠느냐. 불국토에 내린 부처님의 가피로구나."

 

왕의 치사에 조정 대신들도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모았다.

 

"이 모두 대왕의 선정인가 하옵니다. 이 부부에게 후한 상을 내려서 백성들의 귀감이 되게 하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그들 부부의 효성을 가상히 여겨 석종을 주셨으니 내 마땅히 그들의 가난을 구할 것이니라."

 

왕은 손순 부부에게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씩을 하사토록 해 그들의 순후한 효성을 표창했다.

 

손순 부부는 석종을 왕에게 바치려 했으나 흥덕왕은 사양했다.

 

"부처님께서 효성을 가상히 여겨 베푸신 은혜의 신종을 어찌 과인이 받을 수 있겠느냐?"

 

그 후. 손순은 부처님 은혜에 보답키 위해 출가하여 열심히 수행 정진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큰스님이 되길 기다리며 노모를 봉양하면서 돌이를 잘 길렀다. 스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손순은 자기가 살던 옛집을 절로 만들고 재가승이 되었다. 그리고 석종을 본존으로 모시는 한편 절 이름을 홍효사라 불렀다.

 

그 종은 진성왕 때. 후백제의 침입 당시 없어졌다. 종이 발견된 곳을 사람들은 완호평이라 부르다. 그 후 잘못 전해져 지량평이라 불리었다.

 

 

 

- 고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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