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화순. 송석정(松石亭)

백산(栢山) 2016. 3. 28. 09:30

 

송석정(松石亭)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5호.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성길 68.

 

 

 

송석정은 조선조 선조 때 양인용(梁仁容)이 광해군 때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하며 유연자약한 여생을 즐긴 곳이다.

 

양인용이 축조한 이후 그의 아들 양위남(梁渭南), 양우순(梁禹甸)을 거쳐 양지해(梁之瀣)가 중건하였고, 다시 양찬호(梁贊浩)를 거쳐 양익환(梁益煥)이 1893년(고종 30년)에 3차 수리하였다. 1982년에 중수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최근 건물 주변에 석축을 쌓았다.

 

송석정은 정방향에 가까운 팔작지붕으로 2고주 5량가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중앙에 온돌로 된 재실이 있다. 주위는 우물마루의 회랑으로 되어 있고, 기둥을 안쪽에는 방주가 바깥쪽에는 원주가 사용되었는데 원주가 26㎝, 방주가 22㎝이다.

 

송석정 내에는 현재 추사 김정희의 '송석정' 편액과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안방준의 시액, 그리고 광주 학생 운동의 주역인 송홍(宋鴻) 등의 시액 등 50여 인의 시문이 전하고 있다.

 

송석정은 건축 구조상 이 지역 정자 건축의 규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건축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누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인용(1555~1615)은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으로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여함(汝涵), 호는 송석정(松石亭)이다. 양인용은 양팽손(梁彭孫)의 증손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 양산립(梁山立)의 아들이다.

 

학식이 풍부하고 지조가 뚜렷하였고, 선조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종4품)을 지내다가 광해군 때 고향인 화순에 내려와 송석정(松石亭)을 축조하고 그곳에서 시문을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덕행문망(德行聞望)이 당세에 저명하였다.


 

- 웹사이트 -

 

추사 김정희가 남긴 송석정 편액.

 

 

송석정기적비(松石亭紀蹟碑)와 송석정기(松石亭記)

 

 

송석정기(松石亭記)

 

 

 

 

송석정 시문 편액.

 

 

뒷편에서 본 송석정.

 

 

추사 김정희 송석정 편액.

 

 

탐방: 2016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