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실(玉山書室) 전경.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1호.
(1991.07.19)
옥산서실(옥봉사)은 옥봉 백광훈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다녀온 날: 2019년 7월 17일.
전남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129 (송산길 37-9)
옥산서실 외삼문.
조선 선조 때의 문장가인 옥봉 백광훈(1537∼1582)과 그의 아들인 송호 백진남(1564∼1618) 등 후손들과 관련된 유품들로, 옥봉유물관에 모두 모아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그 가운데 9종 113점이다.
지정된 유물을 보면 『백광훈교첩』, 유학백진남백패, 『옥봉집』, 『가장필적』, 『장서동수창록』, 백옥봉 목판, 한석봉서증백진사 목판, 『옥봉집』목판, 영여 등이 있다.
『옥봉집』은 백광훈의 시문을 보아 백진남이 간행한 것이며, 『가장필적』은 백씨 문중과 교류한 인물들의 글을 모아 뽑은 것이다. 영여(靈與)는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돌아올 때 쓰는 가마로 혼령이 탄다하여 요여, 영여라고도 부르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총 높이는 78㎝에 이른다. 백광훈이 세상을 뜨자 선조 임금이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들 유물은 수원백씨 가문의 연혁과 주요 인물들의 활동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옥산서실(옥봉사) 전경.
옥봉 백광훈 선생은 1537년 장흥에서 출생하여 5세 때 옥천면 대산리 옥산초당(옥산서실)에서 정응서의 문하생으로 글공부를 시작했다.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시(詩)와 서예를 즐기다가 41세에 선릉참봉이 되어 관직을 지냈으며 최경창, 이달과 함께 삼당(三唐)시인이라 불리었으며 조선 8대 문장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아들 백진남은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의 휘하에서 전쟁에 참가하였다.
1582년 서거했고 북평면 동해리에 안장됐으며, 1590년 강진 서봉서원에 제향됐다.
1712년 옥봉 백광훈의 5대손이 옥봉사를 건립한 이후에는 옥봉사에서 춘분 하루 전날 제향을 모시고 있다.
2012년에는 해남향교에 옥봉·송호·무안·옥천·월주 선생 향사봉행 청원서를 제출해 해남향교 주관으로 5위 향사위를 봉향하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옥산서실 강당.
옥봉사 강당 중건 기실비.
옥봉사 내삼문 전경.
옥봉사 묘정비.
2019년 3월 16일. 옥봉 백광훈 선생 영정 봉안식과 묘정비· 행장비 제막식이 열렸다.
옥봉 백선생 휘광훈 행장비는 2019년 3월 16일 제막식을 가졌다.
옥산서실 소장품 일괄 안내문.
숭유문(崇裕門) 내삼문.
옥봉사(玉峯祠)
옥봉사(玉峯祠)
옥봉유물관.
옥봉 백광훈의 유물 9종 113점은 '옥산서실 소장품일괄'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1991년 7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81호에 등록되어 옥봉유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옥봉유물관은 옥봉서실이 화재로 소실되어 지난 1981년에 건립했다.
옥봉선생 유뮬관 건립기적비.
강당에서 본 옥봉사.
옥산서실로 들어서는 송산마을 입석.
송산마을 입구에 세워진 옥산서실 이정표.
송산마을 입구에 세워진 옥봉 선생과 함께 3대 시인(詩人)의 비(碑)
(중앙 옥봉 선생, 왼쪽 아들 백진남, 오른쪽 손자 백상빈)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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