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재(小心齋) 전경.
소심재는 지강 양한묵 선생이 소년기에 한문학을 수학했던 서당이었다.
다녀온 날: 2019년 7월 17일.
전남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 465-1.
소심재(小心齋)는 지강 양한묵 선생(1862.4.29-1919.5.26)이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서 제주양씨 양상태의 장남으로 태어나 화순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18년 동안 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서당, 소심재에서 한문학을 수학하였다.
소심재.
소심재 현판.
소심재.
덕촌사, 사오문(四吾門)
덕촌사(德村祠)는 제주양씨 선조들을 모신 사당으로 덕촌 양득중(1665~1742)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양득중은 17세에 박태초(朴泰初)의 문인이 되었으며 1694년(숙종 20)에 천거를 받아 1697년 효릉참봉(孝陵參奉)이 되고 나중에 동부승지에 까지 이르렀다. 저서로는 <덕촌집> 5책이 전해지고 있다.
덕촌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덕촌사(德村祠)
해남군 옥천면 영신마을 입향자는 1634년 용정마을에서 영신마을로 이주한 양도남 씨로 전해진다.
양도남의 조부인 양산형은 하동정씨와 혼인해 화순에서 대산마을로 이주했으며, 그의 둘째 아들인 양범용이 용정으로 이주했다. 이후 양범용의 장남인 양도남이 영신으로 이주하면서 터전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제주양씨가 영신으로 이주하기 전 문의박씨들이 선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양씨 동성촌이었으나 현재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덕촌사 현판.
마을 중앙에는 양득중을 비롯한 팔문장이 수학하던 곳인 제주양씨 문각이 있다. 문각 위쪽에는 양득중의 영정을 봉안한 덕촌영당(덕촌사)이 있는데 1800년대 충청도 부여에 건립되어 있던 것을 이축한 것이다.
덕촌영당(덕촌사) 아래편으로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면 양한묵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양한묵 선생은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한 유일한 전남 출신이다.
1902년 동학에 입교해 천도교의 확장과 교리 정비에 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으며 호남학회와 공진회, 헌정연구회 등을 조직해 활동했다.
양한묵 선생 생가터는 밭으로 개간돼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고 지난 2019년 6월에 영신길 4-25(영신리 447-3)에 생가와 기념관을 준공하여 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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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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