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영암. 육우당 & 구림대동계사.

백산(栢山) 2021. 11. 15. 09:00

영암. 함양박씨. 육우당(六友堂)

 

영암 육우당과 구림대동계는 담장 하나사이로 맞붙어 있다.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3 (남송정길 10)

 

 

 


육우당(六友堂)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로서 박흡(朴洽) 장군이 지은 정자이다. 박흡 장군의 자는 여윤(汝潤),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증손이다. 구림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익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 등 여러 곳에서 큰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남송정 마을 내 도로변에 위치한 육우당은 함양박씨(咸陽朴氏) 박준을 비롯한 여섯 형제가 담소를 나누며 즐기는 장소로 1474년에 건립되었으나, 현재 있는 건물은 소실된 후 대략 300년 전인 1730년대에 중건되었다.

 

육우당의 현판은 조선 시대 3대 명필 중 하나인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고 전해 온다. 석봉의 글씨가 남아 있다는 점이 지역과 건물의 격을 높여 주며, 맞배지붕 측면에 풍판(風板)을 설치하여 건물을 보는 이들에게 일반적인 한옥 기와집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준다.

 

육우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골기와 맞배지붕으로 2칸은 마루, 1칸은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당과 거의 같은 높이로 파묻힌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주초(柱礎)를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다. 주두(柱頭) 없이 그냥 기둥과 보와 도리를 얽었고, 각각 기둥의 크기가 서로 다르며 도리로 연결하였다. 가람 형식은 전후 평주(前後平柱) 위에 대들보를 얹고 그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우고 종량을 얹은 5량 구조이며, 측면 중심 기둥으로부터는 대들보나 합각(合閣)[지붕 위의 양옆에 박공으로 ‘人’ 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각] 밑면에 조그마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암 군서면의 육우당 안내문.

 

 

 

육우당 전경.

 

 

 

육우당의 2개의 현판.

 

*2개 중에 하나는 석봉 한호의 필체라고 한다.

 

 

 

육우당 현판.

 

 

 

육우당 현판.

 

 

 

육우당.

 

 

 

육우당.

 

 

 

영암 구림대동계 리인문(里仁門)

 

육우당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대동계사는 현재 민박집으로 운영 중이다.

 

 

 

리인문(里仁門) 현판.

 

 

 

영암 구림대동계 문서 안내문.

 

문화재 자료 제198호.

 

 

구림대동계가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2년(1706)에 작성된 박사량의 구림동계 전말 서기를 통해 조선 명종 20년(1565)에서 선조 13년(1580)사이에 처음 시작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향약정신의 구현을 통한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으나, 그후 임진왜란으로 침체되었다가 광해군 1년(1609)∼광해군 5년(1613)여 간에 중수하였고, 다시 인조 19년(1641)에서 인조 24년(1646) 사이에 걸쳐 재중수 사업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약(마을향약)계로서 그 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호남의 대표적 동약으로, 조선시대 동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구림대동계사 리인문 옆에 세워진 화민성속(化民成俗) 碑

 

 

 

구림대동계사 & 구림대동계 연혁비.

 

 

 

구림대동계 연혁비.

 

 

 

구림대동계사 전경.

 

 

 

구림대동계사.

 

 

 

 

*다녀온 날: 2021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