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마을 11

전남 나주. 풍산홍씨, 계은정(溪隱亭)

계은정(溪隱亭)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8-26 (풍산리 188) 도래마을의 주산인 식산이 남으로 흘러내린 해발 140m의 감태봉, 그 중턱에서 도래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자이다. 고종 때 인물 풍산홍씨 계은(溪隱) 홍대식(洪大植)이 은거하며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 1826~1885) 문하에서 수학했던 자리로서 사후 1927년 봄에 아들 홍병희(洪丙憙), 홍태희(洪泰憙)가 선친의 학문을 기념하고자 여기에 정자를 짓고 계은정(溪隱亭)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팔작지붕에 함석을 덧대어 비바람이 마루에 들치지 않게 되었고 정면 3칸, 측면 2칸. 중앙 뒤칸은 온돌을 설치한 것까지 누정의 전범을 충실히 따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계은정이 있는 도래마을은 풍산홍씨들이 대를 이어가며 살아 온..

발길을 따라 2021.07.23

전남 나주. 중요민속문화재 제165호. 우남고택(愚南古宅)

우남고택(愚南古宅) 舊, 홍기헌 가옥(洪起憲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65호. 지정(등록)일: 1984.01.14. 최초건립: 조선 영조 8년(1732)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내촌길 3-8 (풍산리 198) 나주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은 풍산홍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종전에는 홍기헌 가옥이라 불리었으나 최근부터 우남고택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안채와 대문채는 1900년대 초에 지은 것이라 하며, 사랑채는 1700년대 중엽의 건물로 추정된다. 대문채의 남단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의 한쪽을 통과해서 사랑채의 남쪽 측면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게 된다. 안채부터 대문채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채는 왼쪽에 부엌 2칸·전면에 부엌방·큰방 2칸·대청이 있고 끝에 1칸의 건넌방이 ..

발길을 따라 2021.07.21

전남 나주. 전남 민속문화재 제9호. 홍기창 가옥

나주 도래마을 홍기창 가옥 입구. 도래마을을 여러 차례 들렸으나 항상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이 날은 대문이 열려있어 내부를 볼 수 있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하여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여 대문에서 바라보고 나왔다. 나주 홍기창 가옥(羅州 洪起昌 家屋)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9호. (1986.02.07. 지정)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20 (풍산리 177) 풍산홍씨 집성촌인 도래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살림집이다. 원래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갖춘 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상량문)으로 미루어 1918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안채는 6칸 크기의 一자형 집으로 부엌 방과 부엌·안방·대청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마루에는 앞쪽으..

발길을 따라 2021.07.19

전남 나주. 나주 향토문화유산 제35호. 양벽정

양벽정 전경. 나주 향토문화유산 제35호. (2013.11.11. 지정) 양벽정은 풍산홍씨 홍징(洪澄)이 건립한 정자로 1949년부터 도래마을 사람들의 합동세배장소로 1974년부터 "도래의 날" 행사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7-4 (풍산리 142) 양벽정은 나주 도래 한옥마을 내에 있는 정자로서 풍산홍씨의 홍징(洪澄;1515~1593)이 창건하였으며 벼슬은 선공감역(善工監役)과 성균사업(成均司業)을 지냈으며 이곳 양벽정에서 소쇄원의 양산보. 송강 정철, 최시망 등 당대 명현들과 교류했다고 합니다. 양벽정은 1587년 창건해서 퇴락한 후 후손 홍찬희 등에 의해 현 위치에 1946년 중건공사를 시작하여 1948년에 완공하였다. 이때 문 앞에 연지를 만들고 이층 누각대문을 ..

발길을 따라 2021.07.14

전남 나주. 풍산홍씨 집성촌. 도래마을

도래마을. (풍산홍씨 씨족마을) *소재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99 (동력길 16) 도래마을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茶道面) 풍산리(楓山里)에 위치한 한옥마을로써 풍산홍씨의 씨족마을이다. 마을 뒷산인 감태봉의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세 갈래로 나뉘어 흘러 마을을 통과하는데, 세 물줄기를 따라 마을이 세 갈래로 갈라져 '내 천(川)'자 형국을 이루고 있다 하여 도천(道川)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도천의 '천(川)'의 우리말이 '내'이므로 이후 '도내'가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쉽도록 '도래'로 변하게 된 것이라 전해진다. 마을은 1480년경부터 형성되어 본래 문씨, 김씨, 최씨 등이 살고 있었으나, 조선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가 기묘사화를 피해서 이곳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뤘다고 합니다..

발길을 따라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