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10

전남 무안. 무안박씨. 유산정 유적비. 전남 문화재자료 제253호.

유산정(遊山亭) 무안박씨 사우. 유산정 유적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 (2005.02.26. 지정) *소재지: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130번지. 무안 유산정 유적비는 유산정(遊山亭)과 같이 있다. 유산정은 원래 고려 충열왕 때 인물인 면남(綿南) 박문오(朴文晤)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알려져 온다. 후에 박문오의 증손 풍정 박의룡(楓亭 朴義龍)이 조선 개국기에 활동하면서 이조, 호조 등의 판서를 지내다가 퇴관한 뒤 이곳에 내려와 지냈다고 한다. 세조 때 무안으로 낙향한 애한정 박익경(愛閑亭 朴益卿)은 박문오의 7대손으로 유산정을 중수한다. 그 뒤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나 지역의 교류 공간으로, 후손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보아진다. 1879년에 이르러 사간(司諫) 박기..

문화재 탐방 2023.08.09

전남 무안. 향토문화유산 제9호. 평산사(平山祠)

평산사(平山祠)와 평천정사(平川精舍) 최익현·기우만·박임상 유학자를 모신 사우. 무안군 향토문화유산 제9호. (제작연도: 1945 /2009.4.19) *주소: 전남 무안군 현경면 원평산길 62-10. 평산사(平山祠)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 있으며 2009년 4월 16일 무안군의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최익현·기우만·박임상 등 3명의 유학자를 모신 사우로 1945년 건립되었다. 박임상(朴琳相, 1864~1944,무안출생)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제자 수 십 명을 규합하여 최익현(위정척사 계열)의 진에 참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지도 두류(智島 頭流)에 단(壇)을 설치하고 이항로·기정진·김평묵·최익현 등 네 스승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 후 최익현과 기우만 선생의..

문화재 탐방 2023.07.10

전북 김제. 탄허스님 생가.

탄허(呑虛) 스님 생가. 탄허스님 생가는 최근에 복원한 관계로 말끔히 단장이 잘 되어있어 보는 이도 흐뭇하였다. *주소: 전북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 300 (대동1길 32) 탄허: 승려 출생 1913년 1월 15일, 전북 김제시 사망 1983년 6월 15일 (향년 71세) 경력 1984.11.~ 탄허불교문화재단 설립 탄허(呑虛 1913년 2월 20일(음력 1월 15일) ~ 1983년 6월 15일)는 대한민국의 승려이다. 본관은 경주, 법명은 택성(宅成:鐸聲), 법호는 탄허(呑虛), 속명(俗名)은 김금택(金金鐸)인데, 그는 고전과 역경에 능통하였다. 탄허는 전북 김제 만경에서 유학자였지만 천도교 신자로 개종한 항일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3세까지는 정읍의 증산교의 일..

한국의 사찰 2023.05.05

전남 함평. 파평윤씨. 영양재(潁陽齋)

임천산 기슭에 자리한 영양재(潁陽齋) ▶소재지: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476. 영양재(潁陽齋)는 모평마을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서 임천산 중턱에 앉아 자애로운 눈길로 마을을 내려다본다. 조선 말기 130여 년 전 천석꾼이던 파평 윤상룡(尹相龍)이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어 건립하여 옛사람의 풍류와 검소한 성품이 배어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는데, 근래에 임선희 씨가 임대하여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영양재에는 조선말 의병을 모아 일제에 대항했던 위정척사론의 거두요 순국 우국지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이 대마도에 끌려가기 전 해인 1905년에 쓴 '영양재기', 윤우선의 '차운', 조선 말기의 항일 의병장 송사(松沙) ..

발길을 따라 2021.05.10

전남 무안. 유산정 유적비(遊山亭 遺蹟碑)

유산정 유적비 올라가는 계단길. 유산정 입구에 세워진 유적비 안내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 소재지: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130번지. 무안 유산정 유적비는 유산정(遊山亭)과 같이 있다. 유산정은 원래 고려 충열왕 때 인물인 면남(綿南) 박문오(朴文晤)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알려져 온다. 후에 박문오의 증손 풍정 박의룡(楓亭 朴義龍)이 조선 개국기에 활동하면서 이조, 호조 등의 판서를 지내다가 퇴관한 뒤 이곳에 내려와 지냈다고 한다. 세조 때 무안으로 낙향한 애한정 박익경(愛閑亭 朴益卿)은 박문오의 7대손으로 유산정을 중수한다. 그 뒤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으나 지역의 교류 공간으로, 후손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보아진다. 1879년에 이르러 사간(司諫) 박기종(朴淇鐘..

발길을 따라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