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유적

충남 아산. 이충무공 묘소(李忠武公 墓所)

백산(栢山) 2015. 6. 1. 10:12

 

 

이충무공 묘소 안내도.

 

사적 제112호.

 

 

*주소: 충남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


 

 

이충무공 묘소 관리사무소.

 

 

 

홍살문.

 

 

 

이충무공 묘 안내판.

 

 

 

이충무공 묘소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사적 제112호.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노량해전에서 전사(戰死)한 공(公)의 유해는 최후의 진지(陣地)였던 완도 고금도에 일단 모셔졌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운구되어 인근 아산시 음봉면 금성산에 장사(葬事)되었으며 순국 16년 뒤인 1614년 이곳 어라산으로 이장(移葬)되었다고 합니다.

 

이충무공 묘소는 1959년 5월 22일 사적 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7월 19일부터 충무공 종손의 동의를 얻어 현충사관리소에서 묘역을 관리하고 있으며 묘소는 충무공의 배위인 상주 방씨와의 합장 묘라고 합니다.

 

(아산시청 문화관광 자료)

 

 

 

이충무공 묘소 전경.

 

묘소 뒷편은 곡장으로 둘러져 있다.

 

 

 

이충무공 묘비.

 

이충무공 묘소 어귀에 있는 이 비(碑)는 1998년 11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무공 후손들이 세웠다고 합니다. 충무공의 증직이 영의정으로 되어있는 이 비(碑)의 비문(碑文)은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지었다고 합니다.

 

 

 

정조어제 신도비각.

 

정조 18년에 세워진 어제비 등이 세워져 장군의 충무정신을 기리고 있다.


 

 

정조어제 신도비.

 

 

 

정조대왕 어제 신도비 전문.

 

 

 

정조어제 신도비.

 

이 비(碑)는 정조대왕이 친히 비명(碑銘)을 지어 정조 18년에 세워진 비(碑)로써 비문(碑文)의 내용 중

"우리 장하신 선조대왕이 나라를 일으킨 공로의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사람의 큰 힘에 의한 것이다.

이제 내가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碑銘)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비명(碑銘)을 쓴다 하랴"

 

(정조- 어제신도비 서문 중에서)


 

 

이충무공 묘소.

 

묘 앞에는 장명등과 문인석상이 있으며, 묘 뒷편으로 곡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묘는 충무공의 배위인 상주 방씨와의 합장 묘이다.


 

 

이충무공 묘비.

 

이 묘비의 비문은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상의 부탁을 받은 이이명이 지었으며 영조 때 세워져 충무공의 증직이 좌의정으로 되어 있다.

 

 

 

이충무공 묘소에서 바라본 충무공 신도비각.

 

 

 

충무공 묘소 옆의 소나무 숲.

 

 

 

이충무공 묘소 입구에 세워진 충무공 신도비각과 이봉상 신도비.

 

음봉면 삼거리에서 고룡산로로 들어서는 입구 삼거리에 안치되어 있는 이충무공 신도비와 이봉상 신도비 전경.


 

 

이충무공 5대손의 이봉상 신도비.

 

이인좌의 난 때(1728년 영조 4) 난군(亂軍)의 급습으로 인하여 순절한 충무공의 5대손 충민공 이봉상(忠愍公 李鳳祥)의 신도비(神道碑)로 충무공 신도비 바로 옆에 있다. 충민공(忠愍公)의 묘소는 신도비 위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문(碑文)은 이재(李縡)가 지었다.

 

 

이충무공 신도비각.

 

 

 

이충무공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자의 무덤 앞 또는 길목 세워 죽은 자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개 동남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라는 말은 죽은 자의 무덤(墓)으로 즉 신령의 길(道)이라는 뜻이다.

 

거북등 위에 세워진 이충무공의 신도비는 공(公)의 외손자 홍우기(洪宇紀)의 청으로 효종 때 영의정 김육(金堉)이 비문(碑文)을 지었고 글씨는 오준(吳竣)이 썼다 한다.

 

 

 

거북등 위에 세워진 이충무공 신도비.

 

 

탐방: 2015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