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무 뿌리와 독이 든 과일

백산(栢山) 2015. 8. 13. 09:41

 

 

 

무 뿌리와 독이 든 과일.

 

원제 : 청부독과(菁父毒果)

 

충청도에 있는 어떤 산사를 지키는 중(僧)이 한 사람 있었는데, 이 중은 무척이나 욕심이 많고 인색한 자로써, 시중을 드는 어린 사미(沙彌)가 하나 있었으나, 항시 배가 고플 정도로 먹을 것을 적게 주었다.

 

그 중은 깊은 산중에서 시간을 알아야겠다는 구실로써 닭 몇 마리를 기르면서 달걀을 삶아 놓고는 사미가 잠이 깊이 든 뒤에 혼자서 먹는 것을 보고, 사미는 짐짓 모르는 듯이 "스님께서 잡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무 뿌리지 뭐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주지가 잠을 깨어 사미를 부르면서, "때가 언제쯤 되었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때마침 새벽닭이 홰를 치면서 <꼬끼오>하고는 울자.

 

사미는 "이 밤이 벌써 깊어서 무 뿌리 아버지가 울었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가을 어느 날. 절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붉게 익었다. 그러자 주지는 감을 따서 광주리 속에 담아서 들보 위에 숨겨 두고 목이 마르면 가만히 빨아먹곤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사미는 또 그게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지는 "이건 독한 과실인데, 아이들이 먹으면 혀가 타서 죽는 것이야." 하고 마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들이 할 일이 생긴 중은 밖으로 나가며, 사미에게 집을 잘 지키라는 당부를 하였다. 그러자, 사미는 댓가지를 이용하여 들보 위의 감 광주리를 낚아 내려서 몽땅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차(茶)를 가는 맷돌인 차년(茶년)으로써 꿀단지를 두들겨 깨버린 뒤에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서 주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급기야, 주지가 돌아와 보니, 꿀물이 방에 가득 차고 감 광주리는 땅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지는 크게 노하여 장대를 들고 나무 밑에 이르러서, 큰 소리로 "빨리 내려오너라." 하고 거듭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미는 "소자 불민하여 마침 차년(茶년)을 옮기다가 잘못하여 꿀단지를 깨뜨려 너무나 큰 죄를 지어 죽기를 결심하여 목을 매달려니 줄이 보이지 않고, 목을 찔러 죽으려 했으나 칼이 없으므로, 광주리 속의 독과를 다 삼키고 죽으려 하였으나, 완악(頑惡)한 이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이 나무 위로 올라와 떨어져 죽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고 눈물을 흘린 척하며 말을 하자.

 

주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또 한편으로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해 주었다.

 

 

 

- 출처 / 고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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