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대패밥

백산(栢山) 2015. 8. 4. 10:06

 

 

 

대패밥.

 

어떤 한 선비가 나이 스무 살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다가 마침내 적당한 혼처가 있어 사주를 교환하고 날까지 잡아 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 늙은 총각이 은근히 처녀를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서 볼 일이 있었어 지나던 길이라 핑계하고 처가 집에 들리게 되었다.

 

저녁 무렵.

 

선비는 색시의 방이 있음직한 뒤뜰로 나가 색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 서성거리고 있자니까,

과연 얼마 후에 색시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지라 선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돌아서서 오줌을 누는 척하였다.

 

색시 또한 장차 낭군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궁금하던 차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힐끗 사나이의 등에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석양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통해 색시는 미래의 남편 물건 크기를 보았던 것이다.  

 

처녀는 깜짝 놀라 곧 어머니의 방으로 뛰어들어가서는

"싫어, 어머니, 난 절대로 시집을 안 갈래요."

 

"왜 이러니, 왜 이래? 어디 말해봐라."

 

"글쎄 병신이 되고 싶진 않은걸 뭐."

 

"병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색시는 아까 본 그림자의 이야기를 하였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연 의심도 드는지라 어머니는 그 날 밤. 사랑으로 나가 장차 사위가 될 선비에게 털어놓고 이야기 한 즉, 선비는 픽 웃으면서

 

"이거 원! 아니 장모님, 왜 그런 이야기를 믿습니까. 걱정이 되시면 보여 드릴 테니 잘 보십시오."

 

어머니는 지체 있는 여자였으나, 원체 딸이 병신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이었으므로 자세히 검사하였다.

 

그리고는 안심이 되어

"딸에게로 돌아가서 대패로 깎아 낼 터이니까, 염려 말라고 하더라고 말해 두겠네."

 

문제는 완전히 수습되었고, 드디어 결혼식 날 밤에 신랑, 신부가 사랑의 일전(一戰)을 몇 번 되풀이 한 뒤에 신부가 하는 말이

"여보, 지난번에 밀어버린 대팻밥을 다시 찾아올 수 없나요?"

 

 

- 출처 / 고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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