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망처자(忘妻者)

백산(栢山) 2015. 8. 18. 09:50

 

 

 

망처자(忘妻者)

 

옛날 돌천동에 아주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뒤에는 조그만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절 스님이 이 사람 집에 드나들다가 그만 이 사람의 아내와 눈이 맞아서 통간하고 친하게 사귀었다.

 

이 땡초 중이 이 사람의 아내를 수시로 끼고 누워 돌다 보니 점점 정이 깊어지자

'내가 이 여자 남편의 건망증이 심한 것을 이용해, 그 남자를 중으로 만들어 내쫓으면 내가 이 여자와 살수가 있겠다' 라고 생각케 되었다.

 

곧 어느 따뜻한 봄날 땡초 중은 이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다.

 

독한 술을 준비해 가지고 그 남자를 유인해 깊은 산 속으로 데리고 가선 산비탈 잔디 위에 남자와 나란히 앉아,

 

"아, 이 산의 철쭉꽃, 저 산의 파란 새싹 참 좋지요." 하면서, 여러 가지 경치를 칭찬하며 술을 잔뜩 권했다. 그랬더니 술에 취한 남자는 어느새 완전히 정신을 잃어 세상 모르고 잠들었다.

 

이에 땡초 중은 그 남자의 머리를 깎은 다음, 자기의 승복을 벗어 그에게 입히고, 염주와 배낭까지 그 남자의 몸에 걸쳐 치장했다.

 

그리고, 육환장(六環杖)도 잠든 그 남자의 손에 쥐어 준 다음, 땡초 중은 그 남자의 옷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는 그의 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남자의 아내에게 자세히 설명 한 후 집안 일을 하면서 그의 아내와 함께 있었다.

 

술을 깬 남자는 자기가 완연한 중이 되어 잇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지만 자신이 중인지 아닌지 기억할 수가 없어 '나랑 술 먹은 중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간 게야'

 

"내 우리 집에 가봐서 남자가 없으면 들어가 살지만, 만약에 어떤 남자가 살고 있으면 나는 분명히 중이야."

 

남자가 산에서 내려와 집 근처를 돌면서 살펴보니, 자기 집에서는 한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서 자기 아내와 다정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이 틀림없는 중이라고 생각하고는 절에 가서 스님행세를 하며 살았다.

 

 

 

- 출처 / 고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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