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함평. 신천강씨 열녀각(信川康氏 烈女閣)

백산(栢山) 2018. 8. 1. 09:00

 

신천강씨 열녀각.
信川康氏 烈女閣.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476.


 

 

신천강씨(信川康氏??~1597)는 파평윤씨 윤관(尹瓘)의 16세손인 윤해(尹海)의 처이다.

 
정유재란 때 집안 사람들은 모두 왜적을 막으러 출전하였는데, 부군인 윤해는 이때 병을 얻어 고향에서 치료 중이었었다.

 

그런데 왜병이 해보면 상곡리까지 침입하게 되자 신천강씨와 윤해는 이들의 갖은 악행을 피하고자 지금의 상곡 화수산(花樹山)으로 피난하다 왜적에게 발각이 되어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다.

 

이에 강씨부인은 겁에 질려 궁리 끝에 은쟁반과 비단 2필을 손에 들어 보이며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였으므로 간신히 그 죽음의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강씨부인과 윤해는 또 다시 왜적에게 발각되었고, 왜적의 칼날이 남편 윤해를 내리 치려고 하자 강씨부인이 두 팔로서 막고자 하였으나 이내 그녀의 양팔은 그 칼날에 잘려 떨어지고 남편 윤해 또한 왜적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후에 강씨부인의 열행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12년(순조 12)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정원용(鄭元容)의 기문(記文)을 받아 열녀각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이 열녀각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홍살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함평군지>

 

열녀려절교위충좌위우부장윤해처의인신천강씨지문.
烈女勵節校尉忠佐衛右部將尹海妻宜人信川康氏之門.

 

열부 강씨 정려문.
烈婦 康氏 旌閭文.

 

충노(忠奴) 도생비 & 충비(忠婢) 사월비.

 

노비부부인 도생과 사월은 신천강씨 부부가 죽자, 주인의 어린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과거에 급제시켰다고 한다. 이후 그 아들이 노비부부의 비를 세우라고 유언을 남겼고, 지금까지 파평윤씨 문중은 노비에게 제를 올린다.

 

열녀각 지붕쪽은 당장이라도 보수가 필요할 것 같다.

 

 

신천강씨 열녀각과 충노 도생비 & 충비 사월비.

 

 

201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