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열전 편 16

도사(道師) 삼천갑자 동방삭(東房朔)

도사(道師) 삼천갑자 동방삭(東房朔) 지금으로부터 2천4백∼5백 년경 중국 한나라(前漢) 시대의 이야기이다. 몇 백 년을 살았다고 하는 삼천갑자 동방삭(본명: 만청자(滿淸子))이란 사람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심산유곡에서 선도(仙道)에 열중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라에서 그를 필요로 해 그를 찾기 위한 수많은 군사들이 산골짝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동방삭은 태연자약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어두컴컴한 석굴(石窟)에서 천리안(千里眼)의 도술을 통해 이미 군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군사들은 동방삭이 거처하고 있는 석굴 근처에까지, 와~와 하고 몰려들었지만 깎아지른 듯이 험난한 절벽 위에 굴이 있어 아무도 그 굴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묘안을 생각한 장수가 활촉을 이용하여, '지금 임금(..

기인열전 편 2025.06.03

기인(奇人) 이토정 선생(李土亭 先生)

- 출처 / 다음카페 - 기인(奇人) 이토정 선생(李土亭 先生) 조선 중종 때.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능통한 형중(馨仲) 이지함(李之函)이 있었다. 이지함은 그 유명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학문을 했고, 한때는 아산(牙山) 현감의 벼슬에도 있었으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 하여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남을 돕기 좋아했던, 그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서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데 더욱 힘을 썼다. 부인과 자녀들은 남다른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토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싸움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나이가 더 할수록 학문과 인격이 높아감에 따라 비록 없이 살긴 해도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 그들은 그들대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지함의 조언..

기인열전 편 2025.05.27

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 (2)

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 (2) *용수: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쓰는 기구. 용수쟁이 노인은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더 배워야 한다며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암자에 들어가 있는데 날마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밀려들었으나 한편으로는 하늘만 알고 있어야 하는 천기누설을 했다는 의미에서 아들 3형제가 물속에 빠져죽는 천해(天害)를 꿈속에서 받았다. 다만 실제로 그래야 할 것을 백발노인으로 나타난 신동의 힘에 의해 무사했던 것이다. 암자에서 심신을 수양하며 어려운 일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기한 예언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 박씨 성을 가진 한 청년과의 대화는 유명하다. 느티나무 골에 산다는 청년은 지극한 효자로 이름이 나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가 몸져눕..

기인열전 편 2025.05.20

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 (1)

기인(奇人) 용수쟁이 노인 (1) *용수: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쓰는 기구. '앗! 이게 웬일인가? 우리 마을이 백리청해(百里靑海)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주역팔괘(周易八卦)를 백지에 그려본 노인은 깜짝 놀랐다.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의 충청도 청주(淸州)에서의 일이다.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치산치수(治山治水)가 미흡해서 매번 홍수를 당해도 어쩔 수없어 재난이 피해가기만을 빌 뿐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금년 홍수에도 마을이 무난할 것인가 하고 주역을 응용하여 여름철 장마를 대비한 우기(雨氣)를 판정해 본 것이다. 물론 그 마을은 본래 수해상습지로 해마다 닭과 돼지 등이 떠내려가는 정도는 보통 있는 일이라 집이나 사람에게만 큰 피해가 없다면 다행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노인의 ..

기인열전 편 2025.05.13

기인, 강태공(奇人, 姜太公) (3편)

- 다음 카페 - 기인(奇人) 강태공(姜太公) (3편) 부인, 수고하십니다. 강태공은 산중의 여인과 작별한 이후, 잠깐 왕실을 들러 문왕과 국사를 논하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낮에 있었던 여인과의 이야기를 부인에게 들려주었더니 부인이 화를 벌컥 내면서, "여자가 한번 결혼해서, 남편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무슨 놈의 재혼을 하옵니까?" 라며 그 여인을 힐책하고 자신의 남편인 강태공에게도, "그런 부정(不淨)스런 여인을 무엇 하러 도와 주었어요." 라고 하며 눈을 흘기며 언설을 높이었다. 이 같은 부인의 말에 강태공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인이 하는 말이 당연했고 재론의 여지 또한 없었다. 강태공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부인이 믿음직스러워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

기인열전 편 2025.05.06

기인, 강태공(奇人, 姜太公) (2편)

- 웹사이트 - 기인(奇人) 강태공(姜太公) (2편) 과부 소원 풀어준 강태공. 당대의 최고 무능력자라고까지 손가락질을 받았던 강태공이 문왕(文王)으로부터 왕사(王師)로 등용되자. 온 장안이 떠들썩하게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태공의 명성은 날로 더해 가고 그러는 동안 세월은 흘러 강태공이 등용 된지 7-8년이 되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험준한 산봉우리 5-6개를 축지법의 도술로 단숨에 넘어 산수가 수려한 기암절벽에 앉아있는 강태공의 눈에 산봉우리 아래 산등성이에서 소복차림의 여인이 손으로 땅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마치 융단을 타고 날아가 듯 가벼운 몸짓으로 여인이 있는 바로 근처 숲 속까지 다가가 내려앉았다. 산봉우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 따름이..

기인열전 편 2025.04.29

기인. 강태공(奇人. 姜太公) (1편)

- 출처: 웹사이트 - 기인. 강태공(奇人. 姜太公) (1편)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만남. 지금으로부터 약 3,100여 년 전. 중국 황하(黃河)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위수(胃水)라는 강가에서 백발의 수염을 휘날리며, 3년째 낚시질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동안 피라미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터라 사람들로부터 무위도식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낚싯대를 붙들고 있는 그 노인은 옷자락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누덕누덕 꿰매져 있는데 그나마 깔끔한 기색마저도 전혀 없어 그저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노인에 불가할 뿐이었다. 한편 주나라를 건설하여 새로운 인재를 찾고 있던 문왕(文王)은 여러 방면으로 지혜와 경륜이 있는 훌륭한 인물을 물색했으나 모두..

기인열전 편 2025.04.22

기인(奇人) 남사고(南師古) (2)

- 출처 / 다음카페-    기인(奇人) 남사고(南師古) (2)  조선 중기의 학자인 남사고는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호는 격암(格庵)이다. 효행과 청렴으로 이름이 났으며,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던 그는 역학, 풍수, 천문, 복서, 관상의 비결에 도통하여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꼭 들어맞았다고 한다.   명종 말년에는 동서분당(선조 8년, 1575년)을 예언했고, 명종 19년에는 "내년에 필연코 태산을 봉하리라" 했는데, 이듬해 문정왕후가 죽어 태릉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는 또 임진왜란을 예언했는데 "살기(殺氣)가 심히 악(惡)하여 임진년에 왜적이 크게 쳐들어올 터이니 부디 조심하라"고 다른 사람한테 말했는데 과연 그 해 임진왜란이 터졌다.  특히 그는 풍수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

기인열전 편 2025.04.15

기인(奇人) 남사고(南師古) (1)

- 출처 / 다음카페-   기인(奇人) 남사고(南師古) (1) 남사고(南師古)는 조선 명종 때(서기 1509∼1571년) 천문지리(天文地理)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 아이를 신동(神童)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렇다고 성장하여 장원급제를 하거나 벼슬을 탐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한때 그가 일종의 천문학 교수인 종6품의 관상감(觀象監)이란 벼슬을 하게 된 것도 역학(易學)·복서(卜筮)·상법(相法)·천문(天文) 등에 남다른 박식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사고 선생이 어린 시절에 불영사(佛影寺)란 절을 갔을 때 일이다. 스님 한 분이 선생을 보고 깜짝 놀라며 천기(天氣)를 받아 눈에 광채가 번뜩이고 있음을 보자 "아! 그놈 참 영특하게 생겼구나." 스님의 이 같은 말을 듣고..

기인열전 편 2025.04.08

기인(奇人) 사석(謝石) 선생.

기인 선생 선생(奇人 謝石 先生)    빵과 국수.  "선생님, 오늘 온종일 걸어와 배도 고프고 밤에는 잠도 자야 하는데 오갈 데가 없으니 걱정이옵니다."  제자의 이 같은 성화에도 스승은 태연한 척하며 좀체 자신의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를 않았다.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나라 고종 황제가 임금이 되기 전 사사로운 자리에서, "당신은 앞으로 임금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예언했던 일로 좌중을 깜짝 놀라게 하였던 적도 있었던 사람이라 업신여길 스승도 아니었다.  훗날 실제 임금이 된 고종 황제는 그를 불러 관리로 등용했으나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하다 하여 사양하고는 하늘을 지붕 삼아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사석(謝石) 선생..

기인열전 편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