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고창. 미당 서정주 생가(未堂 徐廷柱 生家)

백산(栢山) 2019. 4. 12. 09:00

 

미당 서정주 생가 전경.

 

*미당 생가는 본채와 아랫채 두 동을 전형적인 시골집의 초가지붕으로 복원해 두었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578 (미당길 16)

 

 

 

미당 생가 안내문.

 

 

서정주(徐廷柱, 1915~2000)선생은 전라북도 고창 출생, 아호는 미당(未堂) 1915년 5월 18일(음력) 이곳에서 태어나 9살 때까지 살았다.

 

미당 생가는 1942년 부친 서광한이 별세한 후 친척이 거주, 관리하면서 지붕을 스레이트로 개조하였다.

 

그 후 1970년경부터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가 미당 시문학관 건립과 함께 2001년 8월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아랫채.

 

 

菊花와 산돌.

 

 

山에 가서 땀흘리며 줏어온 산돌.
하이얀 순이 돋은 水品 산돌을
菊花밭 새에 두고 길렀습니다.

 

어머니가 심어 피운 노란 국화꽃
그 밑에다 내 산돌도 놓아두고서
아침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다섯 살 때.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 놓고 온 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듬잇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다 속에서는, 쑥국새라든가 -


어머니한테서 이름만 들은 형체도 모를 새가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밤의 초록등불 수효를 늘애 가듯 울음보를 늘애 가면서,
침몰해 가는 내 주위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 물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있던 가위눌림이 알따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애뀌풀 밑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 나흩날 밤에 어머니가 해 입히는
종이적삼 모양으로 등짝에 가슴패기에 선선하게 닿아 오기 비롯했다.

 

 

본채.

 

본채와 아랫채사이에 우물과 나무가 보인다.

 

 

禪雲寺 洞口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본채.

 

 

본채의 당호 유향재(有鄕齋)

 

유병회 書.

 

 

冬天
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아랫채.

 

 

본채와 아랫채사이 마당 한 켠에 우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메말라 있다.

 

 

 

201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