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함평. 자산서원(紫山書院)

백산(栢山) 2019. 7. 8. 09:00

 

함평. 자산서원(紫山書院) 표지석.

 

 

자산서원(紫山書院)은 조선 중기 호남 사림을 이끌었던 정개청(鄭介淸)과 참봉을 지낸 그의 동생 정대청(鄭大淸)을 배향하고 있다.

 

 

다녀온 날: 2019년 6월 23일.

 

 

전남 함평군 엄다면 곤재로 688 (엄다리 555)

 

 

 

문청공곤재정선생유허비.

文淸公困齋鄭先生遺墟碑.

 

 

정개청(鄭介淸)이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문인들이 스승의 신원(伸寃)운동을 전개하면서 1616년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57년(효종8년)에 서인의 집권으로 훼철되었다가 허목(許穆)· 윤선도(尹善道) 등의 상소로 1677년(숙종3년)에 복원되었다.

 

1678년에 '자산서원(紫山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훼철과 복설(復說)을 되풀이하였다.

 

1680년에 경신환국(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관찰사 임규의(任奎毅)와 유경서(柳景瑞) 등의 상소에 따라 훼철되었다.

 

나두하(羅斗夏)· 김덕원(金德遠) 등 유생의 상소로 1689년에 다시 복원되었고 정대청(鄭大淸)을 추가 배향하였다. 그 뒤 이만성(李晩成)의 상소에 의하여 1702년 또다시 훼철되었다.

 

그 후 1752년(영조 28년)에 제동사(濟洞祠)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다.

 

 

자산서원 곤재 우득록 목판 설명문.

 

*설치된 지 오래되어 많이 훼손되어있다.

 

 

 

1762년 훼철되었으며, 1789년 다시 복설되었으나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5차례의 훼철을 당하였고, 8·15해방 이후 1957년에 복설된 뒤 1988년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6호(1987년6월1일)로 지정된 정개청문집 <곤재 우득록(愚得綠)>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1942년 유림 및 후손들에 의하여 유허단향비(遺墟壇享碑)가 세워졌다.

 

 

곤재 우득록 목판 안내문.

 

 

정개청(1529∼1590년)은 고성인으로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이고 나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고, 절에 들어가 유학, 천문지리, 약학, 산수, 역학 등의 잡학에 힘써 강구하여 스스로 곤재라 불렀다.

 

그 후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사암 박순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의 너비와 깊이를 더하였다.

 

명종 20년(1565)경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로 귀향하여 향리에서 후생들을 양성하였다.

 

41세에는 지금의 제동마을에 윤암정사를 짓고 학자들과 교류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피체될 때까지 20여 년간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자산서원 관리사.

 

 

그 문인들로는 나덕준· 나덕윤 등의 나주나씨 일가와 나덕원· 안중묵· 최홍우· 송제민· 정식· 유양· 정인· 윤제· 정지성이 꼽히는데 이들은 후일 정개청의 신원이나 서원 건립(제동사=자산서원) 등에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590년 기축옥사로 함경도 경원 아산보에 유배되었다가 병사하였다. 그의 문집 <우득록>은 호남 사림의 인맥과 동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우득록>은  조선 중기 호남사림의 한 봉우리를 이루었던 곤재 정개청의 문집으로 수차에 걸친 당화를 입으면서도 어렵게 보존된 귀중한 자료이다.

 

 

 

- 웹사이트 -

 

 

곤재 정개청 시비(困齋 鄭介淸 詩碑)

 

 

곤재 정개청 시비(困齋 鄭介淸 詩碑)

 

詠懷 (영회)  회포를 읊음  /  병자(丙子) 1576년 8월 9일 씀.

 
三椽茅屋一枷書 (삼연모옥일가서)    오막집 한 시렁에 가득 쌘 책만 읽다가
百歲人生半世餘 (백세인생반세여)   백년도 한 인생 반이 흘렀네.
心上經綸賢聖事 (심상경륜현성사)   마음 위에 품은 뜻은 현성의 일 뿐인데
世間無望冒簪 (세간무망모잠거)   세상 사람 귀현(貴顯)함을 바라봄이 없소이다.

 

 

대도문(大道門) 외삼문.

 

자산서원 관리사에서 대도문에 이르기까지 고성정씨들의 묘소와 각종 공덕비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유물관(遺物館)

 

 

*유물관은 현재 보수 공사 중이며 문이 잠겨있었다.

 

 

<곤재 우득록 목판>은 전남 유형문화재 146호로 지정된 귀중품이기에 이 유물관에 보관 중인데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관계로 실물을 직접 볼 수 없어 촬영할 수가 없었다.

 

 

자산서원(紫山書院) 강당.

 

앞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양쪽 끝은 방으로 되어있다.

 

 

자산서원 묘정비(紫山書院 廟庭碑)

 

 

겸허문(謙虛門) 내삼문.

 

 

 

곤재 정개청을 모신 윤암사(輪巖祠)

 

겸허문을 들어서면 곤재 정개철을 모신 윤암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1689년에 동생 정대청(鄭大淸)을 추가 배향하였다는데.

사당은 문이 잠겨 내부를 살펴 볼 수 없었다.

 

 

윤암사(輪巖祠) 현판.

 

 

201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