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장흥. 기양사(岐陽祠) 선시보주(選詩補註)

백산(栢山) 2019. 10. 11. 09:00

기산리 동계마을 앞에 세워진 기양사 이정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7호.

(지정: 1999년 2월 26일)

 

 

다녀온 날: 2019년 10월 6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65 (동계길 33-26)

 

 

 

관서별곡의 백광홍을 배향한 기양사(岐陽祠)!


 

장흥 사자산 아래의 세 마을은 기산마을, 동계마을, 비동마을. 그 중 가운데에 있는 동계마을에는 기양사(岐陽祠)라는 사원이 있다. 이곳은 가사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담양의 소쇄원에 버금가는 의미를 가진 곳이다.

 

조선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가사문학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남기는 등 가사문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기봉 백광홍(1522~1556)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기양사(岐陽祠) 그동안 가사문학이라고 하면 관동별곡을 떠올렸고, 송강 정철을 떠올렸다.

 

그러나 백광홍 선생의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을 앞서 불려지고 두 선생간에 교류가 있었으며 정철이 백광홍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 기양사(岐陽祠)에는 문인 13인을 모시고 있는데 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음직한 곳으로 한번쯤은 가볼 만하다.

 


- 웹사이트 -

 

 

기양사 표석비 및 안내문.

 

 

 

기봉 백광홍 관서별곡 기양사.
岐峰 白光弘 關西別曲 岐陽祠.

 

 


기양사 배향 13현(岐陽祠 配享 十三賢)

 

정신제 백장 선생(靜愼濟 白莊 先生: 1342~1411)
정해군 백수장 선생(貞海君 白壽長 先生: 1481~1543)
사주당 백문린 선생(思周堂 白文麟 先生: 1482~1545)

남계   김윤 선생(南溪    金胤 先生: 1506~1571)
서곡   임분 선생(書谷    林賁 先生: 1501~1556)
죽곡   임회 선생(竹谷    林회 先生: 1508~1573)
기봉   백광홍 선생(岐峰    白光弘 先生: 1522~1556)
동계   백광성 선생(東溪    白光城 先生: 1527~1593)
풍잠   백광안 선생(風岑    白光顔 先生: 1527~1567)
옥봉   백광훈 선생(玉峰    白光勳 先生 1537~1582)
지천   김공희 선생(芷川    金公喜 先生: 1540~1604)
석담   백한남 선생(石潭    白翰南 先生: 1567~1639)
술고당 백민수 선생(述古堂  白民秀 先生: 1577~1615)

 

 

기양사 입구.

 

 

 

8문장(八文章) 

 

남계 김윤,     서곡 임분,

죽곡 임회,     기봉 백광홍,

동계 백광성,  풍잠 백광안,
옥봉 백광훈,  지천 김공희

 


 

관서별곡(關西別曲)

 

송강 정철 선생이 지은 관동별곡 보다 25년이나 앞서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8문장 중의 한사람으로 관서별곡은 기봉 백광홍 선생이 평안도 평사로 제수 받아 부임하며 지은 기행가사이다.

 

1549년 28세의 나이로 사마양시(司馬兩試) 합격, 3년후인 1552년 문과에 올라 홍문관 정자가 됨.

이듬해 10월 명종 임금은 영, 호남 문신들로 하여금 성균관에서 시문으로 글재주를 겨루게 하였다.

기봉은 여기서 동지(冬至)라는  부(賦)를 써서 장원을 했다.

 

이때 명종 임금으로부터 상으로 하사 받은 선시십권(選詩十券 1999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207호로 지정)은 3곳에 소장되어있으며 그 중에 한군데이다. 

 

시산(詩山, 지금의 태인)의 일제 이항(一齊 李恒1499~1576)을 스승으로 삼고,

이 무렵 영천 신잠(靈川 申潛1491~1554)을 만나 자주 학문과 철학을 논함.

 

이밖에 석천 엄억령(石川 林億齡1496~1568).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

송천 양응정(松川 梁應鼎1519~1581),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1527~1572),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1539~1583)등의 제현과 깊이 있게 사귀면서 덕업을 쌓았다.

 

 

기봉 백광홍 선생 신도비.

 

 

 

각종 공적비 및 기념비.

 

 

기양강당.

 

 

기양강당 현판.

 

 

장흥 기양사 선시보주(長興 岐陽祠 選詩補註)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7호.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65.

 

 

기양사 <선시보주>는 세종 24년(1442)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출 간행된 것을 명종 8년(1553)에 다시 조달하여 간행한 책을 홍문정자(弘文正字)이던 백광홍(白光弘)에게 하사된 책으로 세종연간에 주조된 초주갑인자본 완절(10책)으로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전존본(傳存本)이다.

 

 

내삼문. 동광문(東光門)

 

 

사당. 기양사(岐陽祠)

 

 

기양사 현액.

 

 

기봉 백광홍 선생 관서별곡 시비

 


문화관광부에서는 기봉 백광홍 선생을 2004년 06월 문화의 인물로 선정하고 국문학사에 끼친 선생의 큰 업적을 선양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어찌 기쁨을 말로 다하랴 이에 선생이 끼친 거룩한 삶과 문학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이렇게 돌에 새겨 오래도록 기리고자 한다.

 

 

기양사 배향 13현 안내문.

 

 

술고당 백민수 선생(述古堂 白民秀 先生: 1557~1615)
퇴계에게 배웠으며 임진외란 때 의병을 모아 장수전, 개녕전, 금산 이형전,
무주전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었다.
제용 감직장을 제수받고 선무원 종훈에 책록되었다.

 

지천 김공희 선생(芷川 金公喜 先生: 1540~1604)
임진외란 때 3년간 왜군과 싸워 공훈으로 군수를 특제 받아 6군을 거쳤다.
가는 곳마다 청덕 주사비가 세워졌다.

 

풍잠 백광안 선생(風岑 白光顔 先生: 1527~1567)
율곡에게 배웠다. 학식이 뛰어났고 천성이 깨끗하여 문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만년에 능주에서 고봉, 하서등과 수창한 시들을 남겼다.

 

 

기봉 백광홍 선생(岐峰 白光弘 先生: 1522~1556)
명종4년 사마양시에 급제. 홍문관정자를 지냈다.
성균관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명종으로부터 선사 10권을 하사 받았다.
1555년 평안평사를 지내면서 가사 관서별곡을 지었다.

 

서곡 임분 선생(書谷 林賁 先生: 1501~1556)
8세 때 태수가 시를 짖게 할 만큼 신동으로 알려졌다.
중종 35년 사마양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나라의 특명으로 정해군 장례식 집례를 맡았다.

 

사주당 백문린 선생(思周堂 白文麟 先生: 1482~1545)
학포의 문하에서 학문이 대성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지기 수양에만 전념했다.
기봉, 동계, 풍잠, 옥봉의 학덕은 선생의 가르침에 연우한 것이라고 참판 김종선은 행장에 적었다.

 

정신제 백장 선생(靜愼濟 白莊 先生: 1342~1411)
고려 공민왕조 때 광정대부, 이조판서,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왕조에 불복, 해미와 장수에서 귀향살이를 했으나 끝내 불사이군의 뜻을
꺾지 않고 적소 장수에서 생을 마쳤다.

 

정해군 백수장(貞海君 白壽長 先生: 1481~1543)
연산군 4년에 무과 중시에 급제,
진도군수와 훈련원 도정을 지냈고 중종반정 때 병충분의 3등 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남계 김윤(南溪 金胤 先生: 1506~1571)
선조 3년 사마시에 급제, 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영천은 자신의 학문을 이을 사람은 윤과 분이라고 했다.
당초 기양사의 주벽이었다.

 


죽곡 임회(竹谷 林회 先生: 1508~1573)
중종 29년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고
남원 부사와 상주, 순창, 나주, 광주, 능주 등 8주 모사를 지냈다.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동계 백광성(東溪 白光城 先生: 1527~1593)
명종 16년 사마시에 급제했다.
송강 이휴당과 사귀었고 학포의 문하생이었다.
벼슬을 버리고 동계에 정자를 짓고 교육에 힘썼다.


 

옥봉 백광훈(玉峰 白光勳 先生: 1537~1582)
명종 19년 진사가 되었으니 선조 10년에야 관직에 나섰다.
최경창 이달과 함께 3당 시인으로 불렸다.
영화체에 뛰어난 명필로 유묵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담 백한남(石潭 白翰南 先生: 1567~1639)
선조 22년 무과에 급제하여 나주영장, 장흥부사, 벽동군수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호종했다. 선조 31년 이항복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기양사 배향 13현 비석.

 

 

경연대(慶宴臺)

 

 

경연대 안내비.

 

 

기산리 마을 후등 59번지에 백회(白繪)의 아들 4형제가 진사에 급제하자 흙을 쌓아 올리고 그곳에서 축연을 베푼 것이 시초였다.

 

봉명제(鳳鳴齊)에서 수학한 8문장 등 문사들이 모여서 글을 짓던 곳이라 하여 문장대(文章臺)라고도 하였다.

또한 마을에 경사스런 일이 있거나 명절이면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이곳에서 고싸움 농악놀이를 즐겼다.

 

 

기봉 백광홍 선생 문화인물 선정 기념비  &  풍아익선시십책 국가문화재 보물1664호 지정 기념비.

 

 

관리사.

 

 

201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