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유적

전남 목포.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모충각)

백산(栢山) 2020. 1. 29. 09:00


목포 고하도 충무공 유적지 표지판.


 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
(1974.09.24. 지정) 


다녀온 날: 2020년 1월 19일.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산230-2 (고하도길 175)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 안내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
(1974.09.24. 지정)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인 조선 선조 30년(1597) 10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 머물면서 군량미 및 군수물자를 모아 전쟁에 대비하던 곳이다.


장군은 이곳에 돌로 남·서 길이 1㎞, 높이 2m, 폭 1m의 성을 쌓아 적의 배를 구별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오가는 배들에게 1∼3석의 식량을 내어놓고 통행첩을 받아가도록 하여 열흘만에 일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무기와 배를 만들며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이충무공 기념비 안내비.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안내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1974.09.24. 지정) 



모충각으로 들어서는 홍살문.



모충문(慕忠門)



모충문 현판.


우하 김정재 선생이 썼다.



모충각(慕忠閣)


이충무공 기념비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

비각 주위에는 많은 소나무가 호위하듯 심어져 있다.



모충각(慕忠閣)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1974.09.24. 지정) 

모충각(慕忠閣)과 이충무공 기념비.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내기 위하여 108일간 주둔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高下島)에 모충각과 이충무공 기념비(지방유형 문화재 제39호)가 서있으며, 유달산 입구에 동상이 있다. 고하도는 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섬으로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쪽비탈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둑과 옛 목포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고하도는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 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서있다.


1722년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산이 건립하고 남구만(南九萬)이 비문(碑文)을 짓고 조태구(趙泰耉)가 글을 쓴 것이며, 비신(碑身)에는 일제 때 일본 군인이 쏜 총탄 자국이 있으나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또한 이 지역을 지방기념물 10호 이충무공 유적지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은 명량승첩 후 1597년 10월 29일 이곳으로 와서 진(陣)을 치고 그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108일간을 주둔하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 섬의 둘레는 불과 12km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큼 이 섬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곳이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왜구에게 내어주는 샘이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유달산과 함께 충무공의 전설적 일화와 호국 얼이 서린 섬이며 울돌목과 제주도로 빠진 해로(海路)이기도 한 이곳은 고화도, 보화도, 비노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목포 사람들은 이충무공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매년 4월 28일이면 이곳에서 공(公)의 정신을 추모하는 탄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모충각 현판.


우하 김정재 선생이 썼다.



비각의 창호는 태극 무늬와 삼지창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비각의 벽돌에는 충무(忠武)라는 글씨가 음각(陰刻)되어있다.



이충무공 기념비 전신.



기념비 상단에 쌍룡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 하단은 보수가 필요할 정도로 부식되어 있다.



추모사.


1985년 11월 22일.

해군제3해역사령관.

준장 권정식이 남긴 추모사이다.



시문 현판.









측면에서 바라본 모충각.



모충각에서 바라본 모충문.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