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전북 정읍.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 사발통문 집 & 동학혁명 모의탑

백산(栢山) 2020. 3. 12. 09:00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대뫼마을 녹두회관으로 가면 무명동학농민혁명 위령탑이 있으며, 뒤편으로는 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 2층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대뫼마을의 원래 명칭은 죽산마을이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산의 모양이 돛단배와 같다고 하여 주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618 (덕신강길 256-3)

 

 

 

주소 (56152) 전북 정읍시 고부면 덕신강길 256-3 (신중리 618)

전화 / 관리기관 063-534-1967 / 대뫼 녹두회관.

입장료 / 휴무일 없음 / 연중무휴.

 

정읍시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지역인사를 참여시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4327년(1994)구성하고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발통문 작성지인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新中理) 주산(舟山)마을에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을 건립한 것이다.

 

탑은 5m 높이의 주탑과 사발통문 모양의 둘레석, 주탑을 둘러싼 12m의 보조탑 32개로 되어 있다. 보조탑 전면에는 백년 전 농민군들의 울분, 비탄 등을 부조물로 표현하였고 중앙 주탑에는 농민군의 한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기상으로 승화시켜 오늘날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정신적 상징물로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무명동학농민군을 가슴에 끌어안고 힘차게 보국안민을 외치는 형상으로 조각하여 백년전과 백년후의 연계성을 강조하였다.

 

이 탑은 정읍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회장 김현)가 주도하여 위령탑 건립과 위령제를 지낸 바 있다.

무명 동학농민군을 위한 조형물로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 백서에서)

 

 

<출처 : 정읍시 문화관광>

 

 

 

필자가 답사한 순서대로 기재하면 다음과 같다.

 

목포 출발 - 서해안 고속도로(줄포 ic) - 무명동학농민혁명 위령탑 - 사발통문 작성의 집 - 동학혁명 모의탑 -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 황토현 전적지(갑오동학혁명 기념탑) - 말목장터 - 만석보 혁파 선정비 - 만석보 터로 진행했다.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무명동학농민군의 조형물.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에 관한 안내문이지만 마모가 심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건립 기념비.

 

 

 

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쉽게 다루어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홍보관 문이 잠겨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그냥 지나쳐 다음 답사지 사발통문 작성의 집으로 향했다.

 

 

 

동학농민혁명 모의장소.

사발통문 작성의 집.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572-1 (덕신강길 249-1)

집 대문 옆 좌측에 붙어있는 신주소는 고부주산길 4로 되어있다.

 

 

 

고부봉기 당시 불 타버렸던 사발통문의 집을 1910년 새로 건립했다 한다.

 

1892년 교조신원운동가로부터 혁명을 준비하던 전봉준 장군은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 착취를 명분으로 삼아 이곳 고부면 신중리 571-2번지 대뫼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봉기를 결의했다고 합니다.

 

20명이 함께 둘러앉아 결의한 내용을 적은 통문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으나, 조병갑의 익산군수 발령으로 보류되어 이듬해 1월 10일 고부봉기로 점화 된 것이라고 하네요.

  
고부봉기 당시 이용태의 탄압으로 불 타버린 송두호의 집은 1910년 중반, 새 집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천도교 고부교구가 설립되었으나 교세의 약화로 소유권이 여러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에서 100미터 전방에 자리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거사를 도모하며 사발통문을 작성한 집 안내문.

 

 

 

사발통문 견본.

 

 

사발통문.


전봉준 장군이 참여한 사발통문의 내용은

 

첫째, 고부성을 점령하고 조병갑의 목을 베어 죽일 것.
둘째,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셋째,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관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넷째,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진격할 것.

 

 

 

동학혁명 모의탑.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7호.

(2016년 7월 26일 지정)

 

 

전북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산16 (덕신강길 225-4 부근)

 

 

 

동학농민혁명 모의를 했던 20명의 신상이 적힌 동학혁명모의 탑입니다.

사발통문 작성의 집에서 황토현 전적지 방면으로 약 200미터 정도 오르막 길을 오르면 동학혁명 모의탑이 자리하고 있다.

 

 

동학혁명 모의탑은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 있다.
2016년 7월 26일 정읍시의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발통문 작성자 후손들이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쌀 1가마씩을 각출하여 1969년 12월 4일 사발통문이 발견된 마을입구 언덕에 사발통문이 동학농민혁명의 사발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웠다.

 

5단의 화강석 기단 위에 높이 3m규모의 탑으로 전면에는 동학혁명 모의탑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고 전면 좌우 모서리에는 대나무를 조각하였다.

 

양 측면과 후면에는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명의 생몰연대와 그 후손들의 거주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동학혁명 모의탑.

 

 

 

동학혁명 모의탑 안내문.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이정표.

 

동학혁명 모의탑에서 황토현 전적지 방면으로 진행하다 보면 길가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41.

 

 

이 우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우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수량이 적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많은 양의 물이 나왔다고 한다.

 

1894년 4월 6일~7일(음력) 벌어진 황토현전투 이전, 여기에서 동쪽방향의 사시봉에는 수천의 동학농민군이, 뒤편 황토재에는 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은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밥을 지어 동학농민군에게 제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토현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우물은 가로 1m, 세로 1m 정방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된 우물 받침대에 甲子 二月 日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우물은 1864년에 축조되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사용했던 이 우물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며 역사교육의 장소로도 가치가 높다 하겠다.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현재 이 우물은 음용수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안내문.

 

 

 

동학농민혁명군 우물 앞에 자리한 가정경로회관.

 

 

주소는 동학로 681로 기재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201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