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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장수황씨. 양건당 충효정려각(兩蹇堂 忠孝旌閭閣)

백산(栢山) 2021. 4. 7. 09:00

양건당 충효정려각(兩蹇堂 忠孝旌閭閣) 전경.

 

양건당(兩蹇堂)이란 한 다리는 병중에 고생하시는 모친을 위해서 잘랐고 또 한 다리는 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으로 인하여 잘라내어 두 다리를 절게 되어 양건당이라 한다.

 

양건당 황대중 장군은 장수황씨로 5대조부 방촌 황희, 증조부 황응, 부친 황윤정, 모친 진주강씨였다.

 

 

▶소재지: 전남 강진군 작천면 용상리 514-1.

 

 

강진군 작천면 용상리 구상마을에 위치한 양건당 충효정려각은 1795년(정조19년)에 양건당 황대중(1551-1597)장군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김억추 장군과 함께 임진·정유재란 때 크게 활약한 황대중은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영암군수로 부임하던 증조부 황응을 따라 이곳 구상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일찍이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자신의 왼쪽 허벅다리 살을 베어 모친의 병을 낫게 한 후 자신은 다리를 절게 되자 모두들 그를 효건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80여명의 별초군 중 한 사람으로 뽑힌 그는 여산전투에서 큰공을 세웠고 1593년에는 김완과 함께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향도관이 되어 진주성 싸움에 참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함께 남원성 싸움에서 두 다리를 절면서까지 분전하였으나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구상리에 있는 정려각은 그가 죽은 지 200여 년 후에야 암행어사 정만석의 상소문에 따라 세워져 1907년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건당 충효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또한 그의 무덤은 마을 뒤편에 있으며 작천 척동에 기념관인 충효관과 사적지비가 있다.

 

 

- 웹사이트 -

 

 

兩蹇堂 追慕碑(左)                 兩蹇堂 長水黃公 諱大中 忠孝追慕碑(右)

양건당 추모비(좌)                양건당 장수황공 휘대중 충효추모비(우)

 

 

양건당 황대중 충효 추모비 비문.

 

효도도 어렵고 충성도 어렵거늘 하물며 충효를 쌍전함에는 얼마나 어려우랴. 우리 중조(中祖) 양건당 부군(府君)은 어려운 충효대도를 위하여 신명을 아낌없이 바쳤으니 참으로 민족 천재의 거울이요 자손 백세의 자랑이다. 부군의 휘는 대중이시오 자는 정숙(正淑)이시니 조야에서 이름 높으신 이조(李朝) 현상(賢相) 익성공 방촌 휘 희(喜)의 5대손이며 부위(副尉) 윤정(允禎)의 2남으로 명종 신해 단기 3884년에 백동 경저(栢洞京邸)에서 출생하시었다. 덕성에 학문을 겸하니 사림의 추앙이 높았다.

 

일즉 자당 진주 강씨께서 중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이매 심히 근심한 나머지 자신의 고육(股肉)을 오려 약(藥)하여 바치시니 창천이 감동하여 친환(親患)은 치유되었으니 이로 인하여 좌편 다리를 절게 되니 세인은 이르되 효건(孝蹇)이라 칭하였다.

 

효명(孝名)이 주달되어 정릉 참봉으로 제수되었으나 노친을 봉양키 위하여 부임을 사양하였다.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충분(忠憤)을 못 이기어 자진 출전하여 도처에서 수훈을 세웠으며 유명한 한산도전의 이충무공진에서 선두에서 지휘타가 적탄에 맞아 우편 다리를 절게 되니 세인은 이르되 충건(忠蹇)이라 칭하였다. 오호라 정유재란에는 불구의 몸으로 출전하여 포위 당한 남원 고성(孤城)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전사하니 때는 정유 8월 16일이니 향년 47세였다.

 

조정에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을 증하였다.
천고에 아름다운 양건의 당호는 세인이 부군의 충효를 감탄하는 애칭의 아호이다. 성산의 선영에는 사시에 향풍이 감돌고 구암(龜岩)의 고묘(古廟)에는 만년 창태가 아롱져있다. 우리들은 사백 성상 충효의 청전(靑氈)을 이어온 고가(古家)의 후예인지라 거룩한 조업을 각골명심하여 충효의 가성(家聲)을 천만대에 보전하리다.

 

단기 4307년 8월, 13대손 의권 근배.

 

 

- [Daum백과] -

 

 

 

 

 

 

양건당 충효정려각은 황대중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1795년(정조 19)에 건립되었다. 1894년(고종 31)에 중수했고, 1907년에 중건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 정려기(旌閭記), 양건황공정려중수기(兩蹇黃公旌閭重修記) 현판 2매가 걸려 있다.

 

 

양건여(兩蹇閭) 현판.

 

 

충신 효자 행 정릉참봉 황대중지려(상)

 

충신 효자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경전참찬 관춘추관 수찬관행 정릉참봉 황대중지려(하)

 

 

 

정려기(旌閭記)와 양건황공정려중수기(兩蹇黃公旌閭重修記) 현판 2매가 걸려 있다.

 

 

정려각 주위에 큰 바위돌들이 널려있다.

 

 

 

 

 

 

 

 

정려각 주위 사방으로 깔려있는 바위돌들.

 

 

정려각 건너편에 노거수와 정자가 정려각을 지키고 있다.

 

 

 

*다녀온 날: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