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영암. 하동정씨. 모효재(慕孝齋)

백산(栢山) 2021. 6. 21. 09:00

하동정씨 모효재(慕孝齋)

 


*주소: 전남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193-2 (신지로 152-46)

 

 

전남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신흥마을에 모효재(慕孝齋)가 있다.
진사 정문손(鄭文孫 1473~1554)의 사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그가 초막을 짓고 대막했던 것 곳이며 1787년(정조 11)에 묘역 내에서 신흥 마을로 이건하였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나주목 지역이었는데 1906년에 영암으로 편입되었다.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와 경계가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 '孝齋在官門東四十里元井面'이라고 적고 있다.

 

이후 모효재(慕孝齋) 1787년 이건하고 1818년 중수에 걸쳐 1886년에 이건하는 등 수 차례 중수 끝에 현재에 건물로 이어지고 있다.

 

건물형태는 골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2칸은 대청마루이고 좌우 2칸은 재실로 되어있다. 정내에는 모효재 중건기 등 많은 기문이 있다.

 

정문손(鄭文孫 1437~1554)은 조선 중기 유학자로서 字는 광윤(光胤)이고, 號는 모효재(慕孝齋)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장령(掌令) 정희주(鄭希周)의 증손이다. 타고난 품성이 매우 효성스러웠고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며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게을리 아니하여 일찌감치 문예를 이루었다.

 

중종 조에 1507년(중종 2) 식년시[생원]에 입격 생원에 올라 반학(泮學)하였으며, 기묘사화 때에는 200여 관생과 함께 상소하여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임천으로 물러나서 금사정(錦社亭)을 짓고 후진을 지도하였다.

 

정문손 효자 정려의 앞에는 모효재 정선생 유적비(慕孝齋 鄭先生 遺蹟碑), 조헌 정공 유적비(嘲軒 鄭公 遺蹟碑), 유적비의 비문을 해설해 둔 유적 비문 해설(遺蹟 碑文 解說)이 세워져 있다.

 

정문손 효자 정려와 비석 주변으로 철제 담장이 둘러져 있고, 정문손은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하동정씨 문중 사우인 모산사(茅山祠)에 배향되어 있다.

 

금사정은 1519년 조선 중종 14년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따르던 나주출신 선비 11명이 집단상소가 받아들이지 않자 낙향해 영산강가에 정자를 짓고 금강계(錦江契)를 조직했다. 그가 금사정에서 읊은 시로 내면의 세계를 들어다 볼 수 있다.

 

 

- 출처 / 한국매일 뉴스 -

 

 


*모산사는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164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사정은 전남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130에 자리하고 있다.

 

 

 

하동정씨 모효재 종회관 전경.

 

 

하동정씨 모효재 종회관 간판이 붙어있다.

 

 

모효재 일각문(충효문)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둘러보고 돌아와야 했다.

 

 

모효재 충효문.

 

 

측면의 문도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모효재를 촬영했다.

 

 

모효재.

 

*현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담장 밖에서 본 모효재.

 

 

담장 밖에서 본 모효재.

 

 

모효재 뒷편으로는 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어 철조망으로 가로 막아두었다.

 

 

 

 

*다녀온 날: 2021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