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북 군산. 임피역(臨陂驛) 등록문화재 제208호.

백산(栢山) 2024. 4. 22. 05:00

임피역(臨陂驛)
군산선의 폐지된 철도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피면 서원석곡로 37.
(임피면 술산리 226-1)
 
 

임피역(臨陂驛)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의 한 역사(驛舍)로 처음 신축, 준공되었다.
이후 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 일제강점기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수탈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936년 보통역 승격과 함께 지어진 현재의 역사도 춘포역사 다음으로 오래된 역사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임피역사(臨陂驛舍)는 화장실까지 포함해 2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조건물 벽면은 모르타르로 마감, 맞배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정면 출입구와 반대편 개찰구 위에 직선으로 박공을 설치하고 선로변 대합실 출입구 상단에 차양을 설치하였는데, 그 차양이 서양식 목구조를 기본으로 한·중·일의 동북아시아 전통 목구조를 더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서양과 동북아시아 가옥 양식을 결합한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 제208로 지정되었다.
 
근대문화재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데, 용변은 주차장 옆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2020년 12월 10일 군산-익산 간 신선으로의 선로이설과 함께 폐역이 되었다. 다만 역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폐역 이후에도 철거되지 않고 관광지로 활용된다.
 
 
- 나무위키 -

 
 

군산 구 임피역 안내판.
 
 

옥구농민항일항쟁. 알림판.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옥구농민항일항쟁 알림판.
 
 

옥고를 치른 34인의 항일투사 명단.
 
 

임피역사(臨陂驛舍)
 
 

임피역사 앞에 붙어 있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표찰.
 
 

개찰구의 역무원과 열차를 기다리는 아낙네.
 
 

서울 자녀들 집에 가려고 열차표를 구입하려는 촌로 부부.
 
 

장에 가려고 열차를 기다리는 아낙네.
 
 

열차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손자.
 
 

겨울 난방용 난로.
 
 

임피 간이역 이야기.
 
 

호남철도가.
 
1925년. 구영서 작사.
 
 

임피역사 안내판.
 
 

철로변에서 바라본 임피역 뒤편.
 
 

플렛폼에서 열차를 타러 가는 길목.
접근금지 표지판이 서있다.
 
 

폐철로
(오래동안 열차가 통과하지 않아 녹이 슬었다)
 
 

통신실과 화장실.
현재는 사용치 않으며 화장실은 객차전시관 앞에 있다.
 
 

임피역 이정표.
 
 

서송 이영구 박사 기념비.

(1931.11.16~2020.2.3.)

 

임피역사는 일문학자 겸 수필가인 이 박사가 광복 전후에 이리공업학교에 통학하고 한국전쟁 기간에는 '文脈(문맥)' 동인들과 문학의 꿈을 키우던 터전이다. 서수면의 소나무를 상징하는 아호 서송(瑞松)처럼 향토를 사랑한 그는 은사 고형곤을 따라 서울대를 졸업한 후, 군산교육대. 숭전대. 중앙대 교수로서 후진을 양성하고, 일본의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했다.

 

1973년에 한국일본학회를 창립한 후 '서송한일학술상'을 제정. 운영하였고, 1990년 소외된 문인을 위한 '우리 문학 기림회'를 결성하여 30여년 국내외에 한국문학 선양에 힘썼으며, 문집 <대화와 독백>을 남겼다.

 

서송의 그 공덕을 기리고자 여기에 기념비를 세운다.

 

*기념비의 기록*

 


 

객차전시관 알림판.
 
 

객차전시관 안내판.
 
 

객차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폐객차.
 
 

객차전시관 내부.
 
 

임피역  / 김중수.
 
 

방죽공원 표지판.
 
 

방죽공원에서 막걸리 파티 중?.
 
이 농부들이 방죽공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뼈 빠지게 고생해서 지은 농산물을 일본놈들에게
강제로 수탈 당하고 기가 막힌 분노를 삭히기 위해서
임피역 앞에 자리를 펴고 술잔을 기울리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누가 뭐라해도 우리의 슬픈 역사 일부분이 분명하다.
 

- 후기 -
일제강점기 때에 군산항을 개항하고 임피역을 개설한 가장 큰 이유는
임피지역을 비롯하여 김제 뜰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쌀과 농산물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기 위함이며, 또한 그 무렵 목포항을 개항한 이유도
나주평야에서 생산되는 풐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기 위해서
호남선 철도를 개설하고 항구를 개항했다.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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