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북 군산. 쌍천 이영춘 가옥. 전북 시도유형문화재 제200호.

백산(栢山) 2024. 4. 24. 05:00

쌍천 이영춘 가옥.
雙泉 李永春 家屋.
 
*일본인 악덕지주 <구마모토> 별장이었다.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00호
(2003년 10월 31일)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동개정길 7.
(개정동 422-11번지)
 
 
 

쌍천 이영춘 가옥은 개정동 423-11번지. 옛 개정병원(開井病院)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1920년경에 군산지역의 대지주였던 일본인 구마모토(熊本利平)가 농장 관리를 위해 지은 별장 주택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개정병원 원장이었던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가 거주하였다.

현재는 학교법인 경암학원의 소유로, 2003년 10월 3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서양식, 일본식, 우리나라 식을 혼합한 양식으로 건립되었고 당시 개정병원 원장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면서 이영춘 가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현상을 볼 수 있어 전라북도 타입문화재로 선정되어 현재는 쌍천 이영춘 박사의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이영춘 박사예방의학의 선구자로써 해방 후 군산지역 의료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가옥을 무대로 다양한 우리나라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근래에 들어 군산지역 청소년들이 쌍천 이영춘 박사를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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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가옥 안내판.
 
 

이영춘 가옥 관람안내판.
 
*안내판이 퇴색되고 흐려서 보기에 안 좋다.
 
 

그림으로 보는 쌍천 이영춘 이야기.
 
*이 안내판도 보수가 필요하다.
 
 

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
쌍천 이영춘 박사 추모비.
 
 

이영춘 가옥.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악덕지주 <구마모토> 별장이었다.
 
 

이영춘 가옥.
 
 

일본식과 서양식을 혼합한 구조의 이영춘 가옥.
 
 

출입구.
 
건물 정면이 아닌 뒷편에서 출입하게 되어있다.
 
 

이영춘 가옥 운영 안내표.
 
 

문화관광해설사용 책상.
 
 

문화관광해설사 해설시간 안내표.
 
 

이영춘 박사의 농촌위생연구소에 관한 발표문.
 
 

쌍천(雙泉)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후 군산에 세워진 자혜진료소에 내려와 근무했다. 자혜진료소는 전라북도 군산 일대에서 3,500 정보의 대토지를 소유하며 농업왕국을 형성한 일본인 대주주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1879~1968)가 세운 의료기관이었다. 구마모토는 조선인 소작인을 수탈하는 한편 그들에게 근대적 치료를 시혜처럼 베풀었다. 처음으로 근대 의료 혜택을 받게 된 소작인들과 가족들은 진료소에 연일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자혜진료소에 이영춘이 1935년 의무실 진료소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진료기록을 썼다.
이영춘 박사가 자혜진료소에 근무하며 소작인 2만여 명을 진료한 기록물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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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를 만들다. 농촌위생의 절정.
 
 

농촌위생연구소 설립취지문.
 
 

책장.
 
접근금지.
 
 

구마모토(熊本) 농장에 대한 안내문.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1879~1968) 일본인.

 
전라북도 일대 군산, 익산, 김제, 정읍, 부안 등 5개 군에서 거대한 토지를 값싸게 착취하고 조선인들에게 소작을 주었던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1879~1968)란 자다.
 
이 자가 일제강점기 전성기에 보유한 농토가 3,500 정보를 넘었는데 이를 계산하면 1,000만 평에 해당하며 여의도 면적(2.9㎢)의 13배를 넘는다.
 
구마모토 농장은 다른 농장에 비해 소작료를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1938년 전북 경찰부장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구마모토 농장의 소작료는 평당 1.25근으로, 다른 농장의 소작료가 평당 1.05근에 비해 고율이었다.
 
또한 구마모토는 최고의 악질이었다. 60~70%에 달하는 고율의 소작료 수취는 물론이고 대부 비료에서도 차익을 챙기고, 농장의 지시를 조금이라도 어기면 구타까지 하는 등 폭력을 휘둘렀던 자다
 
이 자의 잔인성은 흉년이 들어 소출이 줄자 오히려 소작료를 30% 인상하여 조선인들의 피를 빨아먹던 인물이다.
 
이렇게 착취한 쌀을 일본으로 팔아서 농벌(農閥)이 된 것이다.
 
전라북도 정읍에 가면 일제강점기 때 구마모토 소유의 "" 창고를 현재는 정읍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읍근대역사관 :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2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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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熊本) 농장과 자혜진료소.
 
 

농촌위생연구소 설립에 관한 안내문.
 
 

복도.
 
 

이영춘 전시관.
 
 

이영춘 가옥의 건축사적 의미.
 
 

이영춘 박사의 삶과 일상 1.
 
 

이영춘 박사의  삶과 일상 2.
 
 

전시관 일부.
 
 

화장실.
 
근래에 리모델링한 것 같다.
 
 

세면실.
 
근래에 리모델링한 것 같다.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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