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고흥. 쌍충사(雙忠祠) 전남 기념물 제128호.

백산(栢山) 2024. 10. 28. 05:00

쌍충사(雙忠祠) 홍살문.
 
 
전라남도 기념물 제128호.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목넘가는길 34 (봉암리 2202)
 
 
 

쌍충사(雙忠祠)는 충렬공 이대원(李大源, 1566~1587)과 충장공 정운(鄭運, 1543~1592)의 충혼을 모시는 사당이다.

이대원은 1587년 녹도만호(鹿島萬戶)가 되어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물리쳤고, 다시 흥양(고흥)에 왜구가 침입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손죽도 해상에서 순절했다.
 
정운은 1591년 녹도만호가 되어 1592년에 옥포 · 당포 · 한산해전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부산 몰운대 앞바다에서 순절했다.

이순신 장군의 요청으로 이대원을 모시고 있던 사당에 정운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녹도만호를 지낸 이대원과 정운 두 사람의 충신을 모시게 되면서 사당의 명칭을 쌍충사로 변경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1년(숙종 7)에 새로 지었으며, 2년 뒤인 1683년 조정으로부터 쌍충사 사액을 받았다.

1735년(영조 11)에 보수했고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22년 고흥 유림에서 뜻을 모아 다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42년 일본인들이 폐허로 만든 것을 1947년에 ‘녹도 쌍충사 복구 기성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중건했으며 1957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경내에는 1947년에 중건된 사당과 1957년에 건립된 강당, 관리사 등의 건물이 있다.
 
건물 배치는 맨 위쪽에 앞면 2칸, 옆면 1칸 반의 사당이 있고 사당 아래 왼쪽에는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강당이 있다.

오른쪽 밑으로는 관리사를 배치하여 강당과 마주 보게 했다.
 
도양읍 봉암리 해안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쌍충사 앞에 서면 녹동 항구와 소록도를 바라볼 수 있다.

 
 
 
*충렬공 이대원(李大源, 1566~1587)

함평사람 이대원의 자는 호연(浩然)이다.
1583년 18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21세의 젊은 나이에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 1587년 녹도만호에 부임했다.
 
이대원은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자 즉시 출동하여 왜구의 우두머리를 포로로 잡았으며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에게 왜구와의 전투 경과를 보고했다(제1차 손죽도해전, 1587. 02. 10.). *중략.

 
 
 
*충장공 정운(鄭運, 1543~1592)

정운(鄭運, 1543~1592)의 본관은 하동이며, 전라남도 영암(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출생했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거산도찰방 · 웅천현감 · 제주판관 등을 역임했다. 평소 강직한 천성 탓에 재임 중 상관들과 알력이 있었고,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관료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49세 되던 1591년 유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에 임명되었다. *중략.

 
 
 

녹도진성지 안내판.
 
 

쌍충사 위치도.
 
 

흥양수군 길 종합안내도.
 
 

녹도진성지 안내판.
 
 

녹도진 성지.
 
 

녹도진 성지 안내판.
 
 

주차장에서 계단길을 따라 쌍충사로 오른다.
 
 

쌍충사로 올라가는 길.
 
 

쌍충사 외삼문.
 
 

쌍충사 내삼문.
 
 

쌍충사 묘정비.
 
 

쌍충사 묘정비.
 
 

쌍충사 묘정비.
 
 

쌍충사 안내판과 고송.
 
 

고흥 쌍충사 안내판.
 
 

전사청.
 
 

관리사.
 
*관리원의 도움을 받아 사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쌍충사(雙忠祠)
 
 

쌍충사(雙忠祠) 현판.
 
 

이대원 장군(좌)        &        정운 장군(우)

분향 후 재배의 예를 올렸다.

 

이대원 장군 영정.
 
 *필자는 함평李門 29世 載字항렬이다.


정운 장군 영정.
 
 

방명록.
 
*준비된 필기구가 없어 방명록에 서명은 못 했다.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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