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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화순오씨 부조묘(和順吳氏 不祧廟) 모충사(慕忠祠)

백산(栢山) 2024. 11. 1. 05:00

 

화순오씨 부조묘(和順吳氏 不祧廟) 모충사(慕忠祠)

 

 

 

*소재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581-8 (매산길 8)

 

 

 

모충사(慕忠祠)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화순오씨의 부조묘(和順吳氏 不祧廟)

 

오사충(吳思忠, 1327~1406)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본관은 화순和順. 시호는 공희(恭僖).

초명은 오사정(吳思正)이며, 호는 수암(守菴)이다. 1355(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 헌납, 집의를 거쳐 1389(창왕 1) 좌사의대부가 되었다.

 

이 해()에 공양왕이 즉위하자 조박(趙璞) 등과 함께 우왕, 창왕을 폐할 것과 이색(李穡), 조민수(曺敏修), 이인임(李仁任)의 우왕과 창왕 옹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해 삭탈관직을 당했다. 복직되어 판전교시사로 있을 때 정몽주(鄭夢周) 및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다시 멀리 유배되었다.

 

1392(공양왕4) 정몽주가 살해되자 복직되어 좌상시가 되었고, 이성계가 즉위하자, 개국 공신 3등으로 호조전서가 되었으며, 보국숭록대부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공민왕6) 중추원 부사(副使),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 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상의(商議) 중추원사가 되었으며, 1396(공민왕8) 정당문학(政堂文學), 경기좌우도 관찰사, 1398(태조7) 보문각대제학 숭록대부(1)로 재임하였다.

 

1402(태종2) 보국숭록대부(1) 영성군(寧城君)으로 피봉(被封)되고, 1404(태종4)에는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가 되었는데, 시호는 공희(恭僖)이다.

 

오사충(吳思忠)이 서거(1406) "입각도형, 입비기공(立閣圖形, 立碑紀功)"하라는 태조의 왕명에 따라 부조묘의 전사판은 세종 때 최초 경기도 양주에 세워졌으나, 여러 전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 화순오씨 종중에서는 화순오씨의 부조묘(不祧廟)를 모충사(慕忠祠)라 하여 200110월에 전북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581-8 에 새로 건축하였다.

 

모충사는 정면 4, 측면 2칸이며 둘레에는 담장을 쌓고 지반과 비슷하게 기반을 만들어 원형 복발주초를 놓았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과 결구하였다. 공포는 익공양식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풍판을 달았다. 정면에 솟을대문이 있고 관리사도 따로 세웠다.

 

화순오씨 부조묘가 지석리 무신촌에 있을 때는 화순오씨들이 거의 외지로 이사를 하였고, 남아있는 몇몇 집도 가세가 어려워 제대로 돌보지를 못해 비가 새는 등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전국에 있는 화순오씨들이 힘을 모아 2001년에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모충사(慕忠祠)’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건립하였다.

 

화순오씨는 고창지역에서 꽤 세력 있는 성씨였다. 자신들의 조상인 개국 공신 오사충의 화순오씨 부조묘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사당을 신축하였다.

 

 

 

- 웹사이트 -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공희공 증 영의정

영성부원군 화순 오공 휘 사충지비.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공희공 증 영의정

영성부원군 화순 오공 휘 사충지비.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복원.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공희공 신도비(恭僖公 神道碑)

 

 

전사청(관리사)

 

 

화순오씨 부조묘(和順吳氏 不祧廟) 전경.

 

문이 잠겨 있었다.

 

 

모충사 입구는 잠겨있다.

 

 

모충사(사당)

 

 

모충사 현판.

 

 

화순오씨 제단비.

 

모충사 사당 뒤에 자리하고 있다.

 

 

충숙공 증판병부사 화순군 화순오씨 시조 휘 원지단.

: 연주현씨 공위.

 

 

모충사 건축 기념비.

 

 

모충사.

 

 

모충사 안내판.

 

 

 

*20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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