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북 진안. 명려각

백산(栢山) 2010. 5. 18. 08:19

 

명려각(明麗閣)과 부부(夫婦) 시비(詩碑) 전경.

 

주소: 전북 진안군 마령면 등촌리.

(금당사와 마이산 탑사 사이)

 

일시: 2010년 4월 25일 (일요일).

 

 

명려각은 지난 09년 9월에 다녀간 곳으로 블로그에 올렸던 바가 있습니다만, 이번에 다시 찾아 이곳을 소개합니다.

중복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탑사와 금당사 중간에 자리한 명려각과 부부 시비는 영조 45년. 1769년 10월 13일.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인 남원부 서봉방(유천마을)에서 태어나 1786년 결혼한 부부(夫婦) 시인(詩人)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과 삼의당(三宜堂) 김해 김씨를 기리기 위하여 夫婦 詩碑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라 할 수 있다.

 

 

명려각(明麗閣).

명려각은 1994년 진안군에서 세웠으며, 당호를 명려각이라 하게 된 이유는 삼의당 김씨 내외분의 영정각을 진안 군청에서 마련하고 堂號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상의한 결과, 마이산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으로 되어 있듯이, 밝을 明자도 양의 日과 음의 月로 된 글자인 明으로 하고, 삼의당 김씨의 詩 작품 내용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워 고을 麗자로 하여 明麗閣으로 하였다 한다.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해 김씨 부부(夫婦) 시비(詩碑)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은 세종년간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는 성종년간에 사관(史官)을 지낸 김일손의 후손.

 

 

시비(詩碑) 아래 부분에 두 夫婦가 주고 받은 詩 한귀절을 새겨두었다.

 

담락당 하립이 삼의당을 위해 지은 詩.

 

서로 만나다 보니
달나라의 선녀이구려
전생의 인연으로
분명 이 밤 가져온 걸
속세의 중매란 분분할 뿐
우린 천정의 배필이여

 


삼의당의 화답 詩

 

신랑과 선녀
한 날 한 시 한마을에 나서
다시 화촉의 인연을 맞았거늘
어찌 다
이 밤의 기쁨이
한낱 우연이리오.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는 우리 역사상,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257편이나 되는 詩文을 남긴 삼의당 김씨이다.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과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의 부부 단편기.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해 김씨는 영조 45년. 1769년 10월 13일.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인 남원 유천 마을 앞,뒷집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부부 인연을 맺었다. 등등...

 

후면 글은 아래 사진 참조.

 

 

상기 내용이 이어진 뒷면 글입니다.

 

<이 시비를 건립토록 토지사용 승락을 해주신 대한불교 조게종 천년고찰 금당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헌성비:獻誠碑>

담락당과 심의당 기념사업회에서 세운 헌성비.

 

 

담락당과 심의당을 기리는 뜻에서 진안 제일고등학교에서는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 '삼의당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진안 군수가 세운 부부시비 기념비.

 

명려각에 보존된 삼의당 김씨와 담락당 하립의 영정을 일행들과 행동을 같이해야 하기에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돌려야했다.


 

- 봉구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