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 6

전남 나주. 서성문(영금문)

나주 서성문(영금문) 전남 나주시 서내동 118. 서성문(西城門)은 영금문((映錦門)이라고도 불리며 2011년도에 복원한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으로 구한말(1894)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공격할 때 공략대상이기도 하였으며,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서성문(西城門)으로 찾아와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종렬(閔種烈)과 협상을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영금문((映錦門)은 2007년 발굴조사 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문헌에 주로 서성문(西城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만 1815년에 편찬된 것으로 전하는 나주목여지승람에 동남북 삼문에는 편액이 없으며 서문에만 영금문((映錦門)이라는 편액이 있다는 기록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에서 영금문((映錦門) 편액을 걸었다 한다. - 출처 / 웹사이트..

동학 유적지 2015.07.17

전남 나주. 사적 제337호. 동점문(東漸門)

나주읍성 동문 전경(동점문:東漸門) 사적 제337호. *주소: 전남 나주시 중앙동 126-8. 나주읍성(羅州邑城) 동점문(東漸門)에 대한 기록은 1910년대까지 남아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동점문(東漸門: 東門)을 나주시는 2004년 1월 15일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06년 10월 19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루각(樓閣)으로 복원시켰다. 동점문(東漸門)은 나주읍성의 4대문의 하나이며 나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전라도의 대표적인 읍성이며 서울의 도성(都城)과 같이 동서남북 4대문과 객사 동헌 등 각종 시설을 갖춘 석성(石城)으로 둘레는 3.7km 면적은 974.394m2에 이른다. 나주읍성을 나주의 작은 서울이라고도 불러서 소경(小京)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나주는 고려시대 때 나주로 유..

문화재 탐방 2013.10.19

전남 나주. 남고문(南顧門)

나주 남고문(羅州 南顧門) 사적 제337호. 전남 나주시 남외동 284. 나주읍성 남고문(南顧門) 사적 제337호. 고려시대에 쌓은 성으로 조선 세조 3년(1457)에 성을 확장했고, 임진왜란(1592) 후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둘레는 3,126척(약 940m), 높이는 9척(약 2.7m)이며 대포를 쏠 수 있는 성벽에 나온 포루가 3개이고, 우물이 20여 개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4개로 동.서.남.북에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있다. 1993년 남문터에 복원한 남고문(南顧門)이 있는데, 2층으로 된 누(樓)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화려하다.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나주읍성의 옛 모습 일부분을 ..

문화재 탐방 2013.10.11

전남 나주. 정수루(正綏樓)

나주 정수루(羅州 正綏樓) 명칭: 정수루(正綏樓) 종목: 문화재 자료86 지정일: 1984. 02. 2. 2013년 9월 22일. 전남 나주시 금계동 13-18. 조선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羅州牧使)로 부임한 우복용이 지은 것으로, 나주의 관아문(官衙門) 구실을 했던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1층 양옆은 벽으로 되어있고 나머지 부분은 개방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2층에는 한때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매달아 놓았던 북을 다시 복원해 놓았다. 정수루(正綏樓)는 나주에서 편찬된 각종 지지류(地誌類)에 [관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나주의 관아문(官衙門)으로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

문화재 탐방 201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