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나주. 정수루(正綏樓) 문화재 자료86.

백산(栢山) 2013. 10. 8. 14:42

 

 

 

 

나주 정수루(羅州 正綏樓)

 

 

 

 명칭: 정수루(正綏樓) 
종목: 문화재 자료86
지정일: 1984. 02. 2.

 

 

 

2013년 9월 22일.

 

 

 

 전남 나주시 금계동 13-18.

 


 

조선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羅州牧使)로 부임한 우복용이 지은 것으로, 나주의 관아문(官衙門) 구실을 했던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1층 양옆은 벽으로 되어있고 나머지 부분은 개방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2층에는 한때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매달아 놓았던 북을 다시 복원해 놓았다.

 

 

정수루(正綏樓)는 나주에서 편찬된 각종 지지류(地誌類)에 [관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나주의 관아문(官衙門)으로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1753년 5월 29일∼1755년 2월 4일 재임)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수루로 적혀 있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구조나 양식 등으로 보아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로 여겨진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낮은 원형 주춧돌(전면열에는 장초석을 놓음)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2층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2층 기둥 위로는 주두를 놓고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기둥마다 사인마다 1구씩의 꽃받침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 한 2익공식으로 쇠서에는 연꽃봉우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는 대량을 걸고 그 위로 종량을 얹힌 5량 구조이며, 천장은 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거설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측면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 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용머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왼쪽 용은 여의주가 없고 오른쪽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정수루 뒷편에서.

 

이 날 낮 정오에는 정수루 2층에서 소원빌기 북 두드림이 시행되었는데, 광주 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2층 누각에 올라 북을 두드리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순간 다른 장소에 있었기에 그 장면은 직접 볼 수가 없었고 스피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 사진은 그 행사가 마무리된 다음에 촬영한 것이다.

 

 

촬영: 2013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