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18

전북 김제.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院坪執綱所)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院坪執綱所) 전라북도 기념물 (문화재청) (2017. 07. 07. 지정) *주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184-3 (봉황로 5) 집강소(執綱所)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邑·州)의 관아에 설치한 민정기관으로 원래 동학의 교단조직에서 유래된 것으로, 각 고을마다 설치한 접(接)의 수령(守令)인 접주를 집강(執綱)이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원평집강소(院坪執綱所)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했던 곳. 1894년 전주화악 이후 동학농민군 전봉준 장군과 전라감사 김학진은 관민상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건물은 '백정출신 동록개'가 당시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 장군에게 ..

동학 유적지 2022.12.19

전북 정읍. 동학농민군 총관령. 김개남 장군 고택터 & 묘역.

김개남 장군 고택터 들어가는 길목. *주소: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외리 713번지. 전라북도 태인 출생으로. 1853(철종 4)~1895(고종 32). 부친 김대흠, 모친 익산이씨 3남 4여중 셋째 아들이었다. 어릴 때 이름은 영주(永疇)였으며 1893년 11월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일으켰으며 총관령이 되어 호남우도의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다. 성품이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전봉준과 달리 강경파였다. 휘하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청주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싸워 크게 패전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일을 도모하다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관군에게 붙잡혔다. 당시 전라감사 '이도재'는 김개남을 한양으로 압송하지 않고 1895년 1월 8일 전주 장대에서 목을 베었다. 잘린 목은 한양으로 이송되어 서소문 밖..

동학 유적지 2022.12.16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이 묘는 빈 허묘(虛墓)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성하였다. *주소: 전북 정읍시 상평동 산 134.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孫華仲) 장군. 전라북도 정읍의 지주 집안 출신으로 20대에 동학교도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도술을 부린다고 소문이 나서 그의 부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끝난 후에 잔여 부대를 이끌고 광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고향에 숨어 있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전봉준과 함께 처형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1895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져 35세 나이로 최후를 마쳤는데.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묘는 빈 허묘(虛墓)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

동학 유적지 2022.12.09

전북 고창.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도소터 & 피체지

손화중 도소터(孫和仲 都所址) *도소(都所): 동학 도접주들의 총집회 기관. *주소 : 전북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 276-1.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유적 터. 정읍에서 태어난 손화중(孫和仲:1861~1895)은 부안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정읍을 거쳐 무장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은 본래 농민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최부자 집이 있었던 곳이다. 이때 동학 농민 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곳이면서 많은 물자를 보급 받을 수 있었던 괴치리로 도소를 옮겼다고 한다. 손화중 대접주는 무장·정읍·고창·부안은 물론 광주· 나주· 장성· 담양을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였고, 그 대상도 다양하였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한 사료적 근거로는 오지영의 『동학사』..

동학 유적지 2022.12.07

전북 정읍. 동학농민군 총관령. 김개남 장군 묘역.

김개남 장군 묘역(金開南 將軍 墓域) 동학농민운동의 실세이자, 봉기의 주역인 총관령 김개남. *소재지: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669-1.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에 있는 김개남 장군의 묘는 시신이 없는 빈 무덤, 즉 가묘(假墓)이다. 효수 당시 시신을 거두지 못하여 1995년 4월 가묘를 만들었다. 현재 묘역의 관리는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도강김씨 후손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전라북도 태인 출생으로. 1853(철종 4)~1895(고종 32). 부친 김대흠, 모친 익산이씨 3남 4여중 셋째 아들이었다. 어릴 때 이름은 영주(永疇)였으며 1893년 11월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일으켰으며 총관령이 되었다. 호남우도의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다. 성품이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전봉준과 달리 ..

동학 유적지 2021.08.18

전북 정읍.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장군 묘역.

최경선 장군 묘역(崔景善 將軍 墓域) *소재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31-1. 5대 동학 장군(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중에 '생묘(生墓)' 남긴 장군은 동학농민군 영솔장(領率將)이었던 최경선과 김덕명 장군뿐이다. 최경선은 김덕명 등과 더불어,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다음으로 가는 동학농민전쟁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는 전봉준과 각별한 사이였을 뿐 아니라, 농민전쟁 전시기에 걸쳐 운명을 함께 한 동지였다 그는 농민전쟁이 일어나기 5,6년 전부터 전봉준과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정도였다. 최경선이 약방을 했고, 약방을 하면서 동네사람들이나 가난한 농민들에게 약을 지어주었는데, 전봉준도 한때 약장사를 했다는 말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최경선 역시 약방을 운영하면서 농민들과 고통을 함..

동학 유적지 2021.08.16

전남 나주. 나주읍성 서성문(西城門) 일명. 영금문(映錦門)

나주읍성 서성문(西城門) 일명: 영금문(映錦門) 전경. 다녀온 날: 2020년 4월 18일. 전남 나주시 서내동 117. 나주읍성 서성문(西城門) 일명: 영금문(映錦門) 동학농민운동의 아픔이 서린 곳. 나주읍성 서성문 (영금문) 서성문(西城門)은 영금문((映錦門)이라고도 불리며 2011년도에 복원한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으로 구한말(1894)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공격할 때 공략대상이기도 하였으며,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서성문(西城門)으로 찾아와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종렬(閔種烈)과 협상을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영금문((映錦門)은 2007년 발굴조사 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문헌에 주로 서성문(西城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만 1815년에 편찬된 것으로 전하는 나주목여지승..

발길을 따라 2020.06.05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다녀온 날: 2019년12월 8일. 전북 정읍시 상평동 산 134.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孫華仲) 장군. 전라북도 정읍의 지주 집안 출신으로 20대에 동학교도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도술을 부린다고 소문이 나서 그의 부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끝난 후에 잔여 부대를 이끌고 광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고향에 숨어 있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전봉준과 함께 처형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1895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져 35세 나이로 최후를 마쳤는데.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묘는 빈 허묘(虛墓)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성하였다. 배우자와 합장된 묘 앞의 비석...

동학 유적지 2020.03.20

전북 정읍.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전경.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이 탑은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을 주장하며 일어선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서 1963년 10월 3일에 세웠으며 탑 높이 7.5m, 탑신 6.3m, 기단 1. 2m, 둘레 4.64m 규모이다. 다녀온 날: 2019년 11월 10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 3-5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1963년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우리 역사상 최초의 농민 봉기인 갑오동학혁명 정신을 후손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웠다. 이곳은 1894년(고종 31년 4월 7일)양력 5월 11일 갑오동학 농민군과 전라 감영군이 최초로 접전을 벌여 전라 감영군이 참패를 당한 관군의 진지이며 농민군이 대승을 하였던 격전지이다. *갑오동학혁명 기념..

동학 유적지 2020.03.16

전북 정읍.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사적 제295호.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3 (하학리 산 3-5)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황토현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서 1894년(갑오년) 동학혁명운동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의 첫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싸움터이다. 조선 고종 31년 정월(양 2. 17)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령하여 학정을 일삼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해 백산에서 다시 봉기한 농민군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 황토현에 진을 치고 있던 전라감영의 관군을 4월 7일(양 5.11) 새벽, 기습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농민군의 사기를 크게 높여주었고 당시 농민들이 외쳤던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

동학 유적지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