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상 3

전남 강진. 정약용 선생과 사의재(四宜齋)

강진. 사의재(四宜齋)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사의재(四宜齋)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주막집으로 오갈 데 없는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동문매반가의 할머니(주모)가 골방 하나를 내어준 것으로, 다산은 이곳에 '네가지(생각, 용모, 언어, 동작)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4의재라는 당호를 걸고 학문에 정진하여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처음 강진에 도착했을 때, 촌사람들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대역죄'를 짓고 귀양온 선비에게 겁을 먹고 앞다투어 달아날 뿐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진읍 동문 밖에 있던 주막집 노파의 인정으로 겨우 거처..

발길을 따라 2022.03.07

전남 강진. 정약용 선생의 사의재(四宜齋)

강진.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사의재(四宜齋)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주막집으로 오갈 데 없는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동문매반가의 할머니(주모)가 골방 하나를 내어준 것으로, 다산은 이곳에 '네가지(생각, 용모, 언어, 동작)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4의재라는 당호를 걸고 학문에 정진하여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처음 강진에 도착했을 때, 촌사람들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대역죄'를 짓고 귀양온 선비에게 겁을 먹고 앞다투어 달아날 뿐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진읍 동문 밖에 있던 주막집 노파의 인정으로 겨우 거처할 방 한..

발길을 따라 202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