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

전남 강진. 무위사(無爲寺)

백산(栢山) 2012. 7. 10. 12:42

 

무위사 일주문(해탈문)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오후 4시가 가까워 월출산 기슭에 자리한 기찬랜드를 빠져나와 기찬랜드 반대편에 자리한 강진군 무위사로 향했다. 과거 월출산을 등산할 때 무위사 옆으로 난 등산로를 지나갔으나 직접 사찰 경내를 둘러본 바가 없어 언제부터 한 번 들려보려 했으나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찾게 되었다. 일요일인데도 오후시간이라서인지 참배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오히려 호젓한 편이었다.

 

 

전각 배치도.

 

① 극락보전 ② 미륵전 ③ 산신각 ④ 천불전 ⑤ 선각대사편광탑비.
⑥ 3층석탑 ⑦ 벽화보존관 ⑧ 종각  ⑨ 해탈문 ⑩ 안내판.
⑪ 화장실 ⑫ 불교용품 판매점 ⑬ 종무소 ⑭ 화장실 ⑮ 요사체.
16.우물  17.요사체  18.명부전.

 

                                        위 배치도 이미지는 무위사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무위사 종합 안내판.

 

 

무위사 사적 안내판.

 

무위사 사적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최하단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무위다원(無爲茶苑)

 

향긋한 다향이 풍겨나와 미각을 돋운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차 한 잔 음미하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잠시 불교용품만 구경하고 사찰 경내로 발길을 옮겼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 <한국의 사찰>에서 사천왕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무위사중수공적비.

 

 

보제루(普濟樓)

 

 

국보 제13호 무위사극락전 비석.

 

 

무위사 극락보전.

 

극락보전 정면 양편으로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으며 정중앙에 섶돌모양으로 자리한 석물은 배례석(拜禮石)이다. 

 

 

배례석(拜禮石)

 

 

당간지주(극락보전 우측)

 

 

당간지주(극락보전 좌측)

 

 

극락보전 삼존불.

 

 

극락보전 내부.

 

 

극락보전 내부.

 

 

극락보전 내부.

 

 

극락보전 안내문.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안내문.

 

 

극락보전 뒷편의 동백숲.

 

 

미륵전.

 

 

미륵불.

 

 

산신각.

 

 

산신대왕상.

 

 

나한전.

 

 

나한전 내부.

 

 

나한전 불상.

 

 

명부전.

  

 

명부전 불상.

 

 

명부전 내부.

 

 

명부전 내부.

 

 

요사채.

 

 

천불전 기와불사 신청소.

 

 

보물 507호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

 

 

보물 507호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안내문.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76호 무위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76호 무위사 삼층석탑비.

 

 

무위사 삼층석탑 안내문.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이곳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내부 사진이 없습니다.

 

 

범종각.

 

 

범종.

 

 

범종신 문양

 

 

청화당.

 

 

종무소.

 

 

요사채.

 

 

해우소.

 

사찰 외부가 공사중으로 아직 제대로 단장되지 않았다.

 

 

나가는 길.

 

오후 늦은 시간에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도착한 불자들이 참배하기 위해 일주문을 지나 극락보전으로 향하고 있다.

 

 

 

아래에 게재된 문헌은 무위사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무위사(無爲寺)

 

무위사 사적을 보면 절은 삼국통일 후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갈옥사(葛屋寺)로 창건한 것이 첫 번째 중창이라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05년(효공왕 9) 이후 선종인 가지산문(迦智山門)계통의 선각국사(先覺國師) 형미(逈微, 864∼917)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으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한다. 따라서 무위사는 형미 스님이 주석했던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고려시대인 946년(정종 1)에 형미가 제3창을 하면서 모옥사(茅屋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946년은 이미 형미가 입적한 30년 뒤에 최언위가 지은 <고려국고무위갑사선각대사편광영탑비>가 세워진 해라서 믿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 형미가 모옥(茅屋)이던 무위갑사를 왕건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하면서 교화를 펼쳤던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무위사는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형미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가지산문 소속의 선종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절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가지 활동 기록이 보여지는 등 자못 활기를 띠고 있어 주목된다. 나라에서는 1407년(태종 7) 12월에 각처의 명찰로 여러 고을의 자복사(資福寺)를 삼게 하였는데, 이때 무위사는 천태종 17사 중의 하나로 소속되었다. 이것은 무위사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선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그 성격이 변동되었음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같은 사격의 변동은 고려 후기의 천태종 백련결사의 활발한 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만덕산 중심의 백련결사(白蓮結社)도 천태종의 법화 신앙에 입각한 결사운동으로 무위사의 사찰 성격 변동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믿어진다. 결국 무위사는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발했던 고려 후기에 이미 천태종 소속의 사찰이 되었다가 조선 초기 사찰통폐합의 2차 정리기인 1407년에 천태종 소속의 자복사로 남게 된 듯하다. 이 무렵의 연혁을 보면 1430년(세종 12)에 극락보전이 건립되었는데 지금 극락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삼존불도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476년(성종 7)에는 극락보전 후불벽이 만들어졌고 후불벽화가 조성되었음이 <무위사극락보전묵서명(無爲寺極樂殿墨書銘)>으로 확인된다. 이 묵서명을 보면 극락보전 건립에 관직을 부여받은 승려들이 참여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곧 극락전 건립이 조선 초기에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던 고급 기술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물임과 함께 국가적인 사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7 <강진현 불우조>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이제 중수하고 이로 인해 수륙사(水陸社)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보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 · 아미타여래도등의 벽화 조성은 그 조성 시기 및 신앙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 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가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인 것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편 <무위사사적>에 따르면 1555년9명종 10년)에 태감(太甘) 스님이 4창하고 무위사로 개칭했다 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무위사란 절 이름이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1407(태종 7)에 이미 나타나고 있어 <무위사사적>의 이 부분 역시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임잰왜란 · 병자호란 두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절은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아 절의 웅장하고 화려함이 일도(一道)에 으뜸이었다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점차 법당과 요사가 훼손되어져 몇 개의 전각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1678년(숙종 4)에는 극락보전 앞마당에 있는 괘불석주가 제작되었다. 1739년 (영조 15)에 해초(海超) 스님의 공덕으로 전각이 보수되었는데 당시 미타전· 천불전 · 시왕전이 있었다. 당시의 주지는 극잠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절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극락보전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1956년에 극락보전을 수리 보수하고 1975년 벽화보존각을 세워 그 안에 벽화를 봉안했다. 1975년에는 편광영탑비와 사리탑 등에 대한 정화 불사에 이어 봉향각 · 해탈문 · 명부전 · 천불전을 다시 짓고 1991년에 산신각을 1995년에는 이미 있던 동쪽 요사를 늘려 지었다.

 


탐방일: 2012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