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함평 이씨 시조산(咸平 李氏 始祖山)

백산(栢山) 2012. 9. 10. 11:22

 

함평 이씨 시조산 입구.

 

소재지: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장로 657(성남리793-3)
  

 

탐방일: 2012년 9월 2일(일요일)

 

 

필자의 본관은 함평, 시조 彦 할아버지로 부터 29世 재자(載字: 판관공파) 항렬로서 지난 2009년 10월 22일과 2010년 1월 5일에 걸쳐 두 차례 소개한 바가 있다.

 

아래에 함평 이씨 종중보감을 참조하여 간단히 소개 글을 올려봅니다.

 

함평 이씨(咸平 李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광종(光宗) 때 신무위 대장군(神武衛大將軍)을 지내고 함풍군(咸豊君)에 봉(封)해진 이언(李彦)이다. '정묘보(丁卯譜)' 세록(世錄)편에 의하면 시조공(始祖公) 이언(李彦)이 함풍군에 봉해져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성향(姓鄕)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 뒤 4세 순지(順之)는 고려조에서 검교(檢校) 흥위위대장군(興威衛大將軍)을 지냈고, 이어 그의 큰아들 림(琳)은 문과에 급제하여 상의원직장동정(尙衣院直長同正)을 지냈다. 

 

순지(順之)의 둘째 아들 광봉(光逢)은 충숙왕 1년(1314년) 상호군(上護軍)으로서 사신 임명을 받고 원(元)나라에 가서 연호를 원으로 고친 것을 축하하고 왔다. 충숙왕 6년(1319년) 밀직사동지사(密直司同知事)가 되었다가 이듬해 문하평리(門下評理)로 벼슬이 올랐으며, 1324년 삼사사(三司使)가 되었다. 충숙왕 초기에는 심양왕(瀋陽王)으로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이 전지(傳旨)를 보내 나라의 모든 일을 간여하였는데, 이때 그는 상왕인 충선왕을 보좌한다는 권세를 빌려 권한공(權漢功). 채홍철(蔡洪哲). 최성지(崔誠之) 등과 함께 뇌물을 받고 친척에게 관직을 팔았다. 이 때문에 충숙왕의 미움을 샀다. 충숙왕 8년(1321년) 원나라 인종(仁宗)이 죽으면서 충선왕이 토번(吐蕃)에 유배되자, 권한공(權漢功). 채홍철(蔡洪哲) 등과 함께 충숙왕의 명령으로 먼 섬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섬으로 가지 않고 홍주(현재 충남 홍성) 부근에 머물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 뒤 충숙왕에게 원한을 품고 충숙왕 9년(1322년) 원나라에 있던 고려 사람들과 심왕당(瀋王黨)을 만들어 충숙왕을 폐하고 심양왕 고(暠)를 고려왕으로 앉히기 위해 책략을 꾸몄다. 이를 위해 충숙왕을 폐하기를 청하는 글을 원나라 중서성(中書省)에 올렸으나 원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1324년 삼사사(三司事)의 직을 맡아보았고, 1333년 삼사사벽상삼한삼중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명공신(三司使壁上三韓三重大匡輔國崇祿大夫佐命功臣)으로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함풍 이씨(咸豊 李氏)라고 부르다가 태종 9년(1409년)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 현을 합하여 함평(咸平)으로 개칭되면서부터는 함평 이씨(咸平 李氏)로 불러오고 있다.

 

 

함평 이씨 시조 언(彦) 할아버지 묘소 전경.

 

26세 헌(憲) - 27세 계(啓) - 28세 범(範) - 29세 재(載) - 30세 행(行) - 31세 건(建) - 32세 (성,현)聖,賢.

 

 

함평 이씨 시조 언(彦) 할아버지 묘소.

 

 

고려신무위대장군함풍군이공휘언지묘 비석.

 

 

고려신무위대장군함풍군이공휘언지묘 비석.

 

 

 

 

시조 언(彦) 할아버지 묘소 앞에 세워진 석등.

 

 

 

 

함평 이씨 삼세설단비 전경.

 

좌로부터 2세 화(和), 3세 상(尙), 4세 순지(順之) 할아버지 제단이다.

 

 

함평 이씨 삼세설단비.

 

함평 이씨(咸平 李氏)는 5세(世)에서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 광봉(光逢)을 파조(派祖)로 하는 부원군파(府院君派)와 림(琳)을 파조로 하는 동정공파(同正公派)로 나누어지며, 11世 때 다시 감정공파(監正公派). 교수공파(敎授公派). 기성군파(箕城君派). 기와공파(箕窩公派). 대교공파(待敎公派). 목사공파(牧使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운봉공파(雲峯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철성군파(鐵城君派). 판관공파(判官公派). 함성군파(咸城君派). 현감공파(縣監公派). 현령공파(縣令公派). 효우공파(孝友公派) 등 여러 派로 다시 나누어진다.

 

함평 이씨(咸平李氏)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70명을 배출했으며, 중시조(中始祖)는 10대손인 종생(從生: 1423∼1495)으로 극명(克明)의 아들이다. 내금위(內禁衛)에 속해 있다가 세조 6년(1460년) 무과에 급제해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이듬해 선절장군(宣節將軍)으로 의흥위대호군(義興衛大護軍)이 되었다. 1466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1467년 위장(衛將)으로 이시애(李施愛)의 난 토벌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으로 함성군(咸城君)에 봉해졌다. 이해 9월 강순(康純)의 휘하에서 파저강(婆猪江)의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했고, 세조 4년(1468년) 영변부사(寧邊府使)에 승진했다. 다음해 영변에 진(鎭)이 설치되자 절도사(節度使)를 겸임, 성종 6년(1475년)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79년 건주의(建州衛) 정벌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위장(衛將)으로 출전하여 야인들을 토벌하고, 1481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1485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시호는 장양(莊襄).

 

 

함평 이씨 2세

고려신호위대장군함평이공 화 제단.

배 함풍 임씨.

 

 

함평 이씨 3세.

고려신호위대장군함평이공상문 제단.

배: 함풍 노씨.

 

 

함평 이씨 4세.

검교흥위위대장군함평이공순지 제단.

배: 개주 왕씨.

 

오랜 세월 풍화에 의하여 마모되어 새겨진 글이 분명치 못하다.

 

 

경모재.

 

시조산에서 내려다 본 경모재 전경.

 

 

경모재 담 옆에 핀 베롱나무 꽃(일명: 백일홍)

 

 

경모재 전경.

 

경모재에서는 매년 4월 두번째 일요일에 시제가 열린다.

 

 

경모재 현판.

 

 

함장로 661이라는 신주소 표지가 붙어있다.

 

 

함평 이씨 발상지 표석.

 

 

함평 이씨 발상지 표지석.

 

 

함평 이씨 발상지 연혁문.

 

 

중산 함평 이공제관공적비.

 

 

함평 이씨 문중인사들 공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