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문예계

목포 문학관 <김우진 관2>

백산(栢山) 2009. 11. 20. 11:54

 

김우진 像.

 

 

김우진은 1897년 안동 김씨의 후예인 무안 감리를 지낸 김성규(金星圭 1863-1936)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는 부친이 장성 군수로 재임하였으나 11세에 부친이 무안 감리로 부임하면서 목포로 이주했다.

 

號를 초성(焦星) 또는 수산(水山)이라 하고 목포공립 보통학교(지금의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8세에 일본 구마모또(態本)농업학교에 입학하였고, 19세에 곡성(谷城) 출신 정점효(鄭點孝)와 결혼하였으며, 그 후 1924년에 와세다대학(早稻田)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목포로 귀향해서는 영농사업체인 상성합명회사(祥星合名會社)의 사장에 취임하였고 회사 在任 時에 많은 작품(시 50편, 희곡 5편, 소설 3편, 평론 20편)을 남겼다. 지금은 카톨릭 교회(북교동 성당)가 들어섰지만, 그가 살던 목포시 북교동 46번지의 방대한 대지 위에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살던 안채와 별채가 즐비했었고, 그는 2층 양옥인 <백수제>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당시 도쿄(東京) 유학생으로 연극동우회를 조직하여 국내 순회공연을 하는 등 신극 발전에 힘썼다.
 
1926년 성악가 윤심덕(尹心悳)과 현해탄(玄海灘)을 건너다 관부연락선에서 투신정사(投身情死)한 것으로 전해지며, 국어와 일본어로 쓴 40여 편의 詩를 남겼고, 희곡도 썼다.

 

현재 북교동 성당(천주교회)이 자리한 지역의 일대가 김우진의 아버지인 김성규가 살던 성취원이 있던 곳으로, 초성(김우진)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성규와 김우진 전시실 (우측 부분)

 

 

 

김성규와 김우진 전시실 (좌측 부분)

 

 

 

김우진의 부친 김성규의 만년의 모습(1934년 72세)

 

 

 

김성규의 관복.

 

 

 

김성규의 유품.

 

 

 

김성규의 유품.

 

 

 

김성규의 유품.

 

 

 

김성규 유언서 (1935년)

(우진, 철진,익진 형제 엮음)

 

 

 

칙령.

무안 감리 임명(1903.3.16)

정3품 통정대부 김성규를 무안감리에 임명하고 신임관 6등급으로 품게를 내림.

 

 

 

목포공립보통학교(현재 목포 북교초등학교)

 

 

 

목포 북교 초등학교.

 

 

 

백수재(현재 북교동 성당)

 

 

 

이 시비가 현재도 존재하는지???

 

 

 

현재 북교동 천주교회.

 

 

 

김우진의 일본 와세다 대학 시절.

 

 

 

아들 백일 사진.

 

 

 

<산돼지> 공연 장면.

 

 

김성규 家의 보은사 총회(1935년)

 

 

 

단막극 <이영녀> 극본.

 

 

*본문 중 일부는 웹사이트<목포문학관>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글, 그림 / 이태원 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