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과 설화

방출궁녀 간통금지율

백산(栢山) 2015. 9. 12. 10:42

 

 

 

방출궁녀 간통금지율.

 

궁중에 궁녀로 있다가 왕궁 밖으로 내보내어진 이른바

방출궁녀(放出宮女)와는 누구도 함께 잠자리를 해서는 안 되는 율법이 있었다.

이 율법을 '방출궁녀 간통금지율(放出宮女 奸通禁止律)'이라고 했다.

 

선조 때 도승지자리에 있던 이항복의 집에는 옆에서 일을 도와주는 겸인(비서)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선조 임금의 궁녀로 있다가 방출된 한 궁녀를 사랑하여 간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방출 궁녀 간통 금지 법률에 걸려서 구금되었고, 장차 사형에 처해질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이항복은 도승지라는 막강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중죄를 저지른 이 겸인을 빼낼 도리가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중 때마침 퇴근한 이항복을 급한 일로 입궐하라는 연락이 오자.

 

"옳지, 오늘 이 기회를 이용해야지.'

이렇게 생각한 이항복은 급히 들어오라는 어명에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켜 늦게 들어갔다.

 

그러자, 임금은 도승지가 임금의 부름에 지체했다며 화를 내고는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이항복이 늦게 된 이유에 대해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명을 받고 급히 대궐로 달려오고 있는데, 종루가(鐘樓街)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웃으면서 웅성거리고 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가서 물어보니 사람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은 무슨 말을 하려는가? 그 이야기란 또 무엇인가?"

임금이 아직 화가 덜 풀려 이항복을 노려보자,

 

이에 이항복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어 아뢰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니다가 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진드기'라는 벌레를 만났다.

이 진드기는 별종 진드기로서 다 자라면 콩알만하게 되는데, 항문이 없어서 배설을 하지 못하는 곤충이었다. 그래서 소의 피를 빨아먹으면 계속 몸의 가죽이 늘어나 커지다가 마침내 더 커지지 못하면 죽는 벌레이다.

 

모기를 만난 진드기는 배설을 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다가, 모기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봐 모기야, 나는 본래 항문이 없어서 배설을 못하니 배가 팽창되어 견디기 어렵다. 네가 가진 그 날카로운 침으로 내 배를 찔러 구멍을 하나 뚫어주면 내가 그 구멍으로 배설을 할 수 있겠으니, 제발 내 아랫배에 구멍을 하나 뚫어다오. 간절한 부탁이다."

 

이 부탁에 모기는 놀라면서 말하길

"너 무슨 큰일날 소리를 해? 근래에 도승지 이항복의 겸인은, 어떤 여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아랫배아래의 구멍을 다시 뚫었는데도 중죄에 걸려 구금되어 있지 않느냐? 너의 그 본래 구멍이 없던 배에 내가 새 구멍을 뚫으면 죄가 훨씬 더 무거울 텐데, 내 어찌 그런 짓을 하겠니? 어림도 없다. 날 죽일 소릴랑 하지도 말아." 이러고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날아가 버렸다.

 

"전하! 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의혹이 많이 생겨 좀 깊이 생각하느라고 그만 시간이 지체  되었습니다. 통촉해 주옵소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임금은 빙그레 웃으면서,

"내 또 경이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았노라. 지금 그 얘기는 옛날 동방삭의 해학과 비슷한 데가 있구먼. 경의 겸인이 구금된 것에 관련된 이야기로다."

 

이리하여, 이항복 겸인의 죄는 면하게 되었다.

 

 

 

- 고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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