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광주 북구. 충민사(忠愍祠)

백산(栢山) 2015. 10. 7. 09:17

 

충민사 입구 전경.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3호. 


광주 북구 화암동 산239번지.


 

전상의(全尙毅: 1575∼1627) 장군은 선조 36년(160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첫 벼슬로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인조 3년(1625)에는 구성부사로서 좌영장을 겸하였다.

 

광해군 9년(1617)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回答使)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키는 공을 세웠다. 또한 인조 5년(1627)에 후금이 인조의 친명정책을 구실 삼아 3만 대군으로 침략하자 안주성 싸움에서 분전하였다. 그러나 구원병이 오지 않자 모든 장병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누각 위에 올라 싸우다 53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난이 끝난 후 자헌대부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관직이 높여졌으며, 숙종 10년(1684)에는 안주의 충민사에 헌종 15년(1849)에는 광주의 경렬사와 제주의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전상의(全尙毅) 장군 신도비.

 

 

충민사 안내판.

 

 

충민사 안내도.

 

 

충민사 안내문.

 

 

창절문(彰節門)

외삼문.

 

 

충민사 전경.

 

정면으로 수의문(守義門)과 그 뒤로 충민사(忠愍祠) 사당이 보이며 우측에는 정려각(旌閭閣), 그리고 좌측으로는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상의(全尙毅) 장군 유적정화 기념비.

 

 

정려각(旌閭閣)

 

 

유물관 전경.

 

 

유물관 내부.

 

 

유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전상의 장군의 각종 유물들.

 

 

 

 

전상의 장군의 갑옷.

 

 

서간첩 및 칼과 모자.

 

 

대궐에 출입할때 착용했던 요대와 의관.

 

 

조복(朝服)

 

궐에 출입할 때 착용했던 의복.

 

 

병조판서 교지.

 

 

어모장군 교지

 

 

수의문(守義門)

내삼문.

 

 

충민사(忠愍祠) 사당.

 

이곳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청(淸)나라 침략군을 맞아 안주성(安州城)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순국한 구성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 전상의(全尙毅)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장군은 조선(朝鮮) 선조(宣祖) 8년(1575)에 지금의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 서구(西區) 구동(龜洞)에서 전용(全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력과 무술이 남달리 뛰어나 선조 36년(1603) 29세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첫 벼슬로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다.

 

광해군(光海君) 9년(1617) 오윤겸(吳允謙)과 함께 회답사(回答使)로 일본(日本)에 건너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끌려간 동포 150여 명을 귀국시키는데 공을 세우고, 내금위(內禁衛) 예차(豫差) 및 어모장군(御侮將軍)을 봉직하였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충민사 사당 내부.

 

 

전상의(全尙毅) 장군 영정.

 

 

 

2015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