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함평. 귀령재(歸潁齋)

백산(栢山) 2016. 10. 27. 09:00

 

귀령재(歸潁齋) 입구 솟을대문.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476 (모평마을)

 

 

파평 윤씨 종가인 귀령재(歸潁齋)는 대사헌을 지낸 윤자화(1825~1884)가 부모 3년상을 치르기 위해 지었다는 집으로 다락방처럼 들어 앉힌 공루 안엔 “금의환향하실 적에 쓴 일산(日傘)”이 이 집의 내력을 전한다.

 

윤자화(尹滋華)는 1825년(순조 25)∼1884년(고종 21).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중명(重明)이고, 호는 국포(菊圃) 귀령재(歸穎齋)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전라남도 함평(咸平)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윤오신(尹五莘)이고, 조부는 윤정규(尹丁圭)이며, 부친은 윤기진(尹璣鎭)이다. 외조부는 이종하(李宗夏)이고, 처부는 김미해(金未海)이다.

 

1855년(철종 6)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8위로 급제하여 주서(注書), 이조정랑 겸 문학(吏曹正郞兼文學),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령(掌令), 사간(司諫)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이후 낙향하여 호를 귀령재(歸穎齋)라 바꾸고 산수(山水)와 벗하며 지냈다.

 

 

- 웹사이트 -

 

 

귀령재(歸潁齋)

 

필자가 귀령재를 들렸을 때는 인기척은 없었고 대청마루에는

금방 짜다 놓은듯한 참기름 병들이 즐비하며 냄새가 고소하였다.

 

 

귀령재(歸潁齋) 편액.

 

 

엄청나게 큰 대들보가 집안을 받쳐주고 있다.

 

 

귀령재기문(歸潁齋記文)

 

 

서가래 역시 굵고 튼튼하다.

 

 

도천헌(道天軒)

 

귀령재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천헌에서 바라본 귀령재와 솟을대문.

 

 

화단에 활짝핀 꽃.

 

 

백일홍과 맨드라미.

 

 

안샘(천년샘)

 

귀령재의 담장을 따라 모평헌(민박집)을 지나 막다른 곳에 있는 안샘(천년샘)은 모평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나이가 족히 1,000년은 넘는다고 한다.

 

과거 관아의 우물로 사용됐던 것이다. 뒷산 대숲사이로 차중의 으뜸이라는 수백 년 된 야생 죽로차 밭이 있다. 여기에서 흘러나온 수액이 우물로 들어와 물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안샘 안내문.

 

 

아직도 맑은 안샘 샘물.

 

현재 이 샘물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수도시설이 좋으니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6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