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나주. 송재사(松齋祠)

백산(栢山) 2017. 3. 20. 09:00

 

나주 송재사(松齋祠)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0호(2013.11.11)

 

 

전남 나주시 문평면 문평로 103-11.

 

 

송재사는 송재(松齋) 나세찬(羅世纘:1498~1551)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최신(崔信) 등 호남유림의 건의(請建院宇書)로 1702년(숙종 28) 건립되었다. 이어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1514~1547), 1859년에 체암(遞庵) 나대용(羅大用:1556~1612)을 추배하였다.

 

1868년 훼철 이후 1901년(광무 5) 나윤후(羅允煦) 등 후손이 옛터에 설단향사(設壇享祠)하였다. 192년 복설되면서 금성나씨문중의 사담(沙潭) 나덕윤(羅德允:1548~?) 창주(滄州) 나무송(羅茂松;1577~1653), 구초(九草) 나무춘(羅茂春:1580~1619) 등 3인을 추배하여 문사적(門祠的)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1933년 강당 중건, 1972년 사당중수, 1980년대 초 강당과 외삼문 중수를 거쳐 1998년 사당과 내삼문을 중건하였다.

 

나세찬은 1536년 중시(重試), 1538년 탁영시(擢榮試)에서 장원하여 문명을 떨쳤을 뿐 아니라 권신을 서슴지 않고 탄핵하는 기개가 있었다.

 

중시의 책문(策文)에서 권신 김안노(金安老)의 전횡과 비리를 통박하여 고성에 유배되었고, 한성우윤으로 문소전(文昭殿)에 인종을 람묘(欖廟)하려다가 전주부윤으로 좌천되었다.

 

임형수는 당대의 학자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과 교유하며 학문과 문장으로 명성이 있었고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절도안치(絶島安置)된 뒤 사사되었다.

 

나대용은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여러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 송재사 안내문 -

 

 

지경문(止敬門)

송재사 외삼문.

 

 

송재사 안내문.

 

 

금성나형주선의적비(左)와 헌성비(右)

 

 

 

 

송재사 묘정비.

 

 

강수재(講修齋)

 

 

강수재 편액.

 

 

송재사 내삼문.

 

 

송재사 사당.

 

 

송재사(松齋祠) 편액.

 

 

보호수 배롱나무.

 

 

보호수 안내판.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