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해남. 황조별묘(皇朝別廟)

백산(栢山) 2018. 3. 23. 09:00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황조별묘 전경.

 

해남군 향토문화유적 제10호.

 
소재지: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381-1.
신주소: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길 96-2.

 


지난 2014년 12월 14일에 황조별묘를 다녀왔는데 그 이후 보수공사로 인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하여 다시 방문케 되었다. 둘러본 결과는 역시 예전과는 다른 황조별묘의 영역이 너무나 다르게 변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탐방객이 직접 들어가 살필 수 없도록 외삼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하여 사당과 진린장군의 영정은 과거의 사진으로 대신하였다.

 

 

 

-명(明)나라 진린(陳璘)과 황조별묘(黃朝別廟)-

 

황조별묘는 명나라 수군도독으로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구원군으로 왔던 진린장군과 그 후손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진린(陳璘)은 군선 500여 척과 병사 5.000을 거느리고 고금도를 비롯하여 녹도, 금당도 등지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왜군을 상대로 싸웠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게되자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祭文을 짓기도 하였다.

 

또 이곳은 진린(陳璘)의 손자 진영소(陳永素:1644~?)가 명나라가 멸망하게 되자, 진린의 유지에 따라 중국의 광주로부터 관왕묘(關王廟)가 있는 거금도에 이주하게 된다.

 

그 후 진영소의 아들 석권과 유권은 해남으로 이거 명나라 유민이라는 뜻으로 이곳을 황조동이라 하였으니 마을 이름이 지금도 황조리라 한다.

 

1676년(숙종5)에 단을 만들어 제향해 오다가 1871년(고종8)에 별묘를 건축하고 1960년에 삼문을 신축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현재 황조별묘 사당 바로 옆에 18대손 진덕삼씨가 거주하며 사당을 보살피고 있으며 황조리에는 약 70여호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진린장군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다.

 

 

 

*본 블로그 2015년 1월 25일자 '황조별묘' 참조 요*

 

 

황조별묘 안내문.

 

 

황조별묘 안내석.

 

 

만동문(외삼문)

 

 

만동문(萬東門) 현판.

 

 

담장 밖에서 바라본 새로 꾸며진 황조별묘 사당.

 

 

황조별묘 사당 앞에 세워진 향로.

 

 

과거 황조별묘의 외삼문.

 

 

과거의 황조별묘 사당.

 

 

진린 장군 영정.

 

 

무관복장을 한 진린장군.

 

 

2018.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