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전남 나주. 호암서원(虎巖書院)

백산(栢山) 2018. 7. 16. 09:00

 

호암서원 외삼문(솟을대문)

 

호암서원은 문이 잠겨있어 서원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촬영한 관계로 호암사(사당)는 촬영할 수 없었다.

 

 

전남 나주시 왕곡면 옥곡리 13.

 

 

전남 나주시 왕곡면 옥곡리 광산이씨 집성촌을 이룬 방축마을 입구에는 나주 호암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경내에 있는 호암사는 조선시대 천하의 문객 송강 정철(1536~1593)과 악연의 인물들과 이곳에서 만난다. 

 

호암서원에는 예학에 밝고 이조참판에 오른 기대승을 길러낸 경공  중봉 이중호를 주벽으로 금호 나사침, 문헌공 곤재 정개청, 청계 류몽정, 만취당 이황정, 북산 이급, 동암 이발, 정곡 조대중, 남계 이길 등  당시 희생 당한 호남 출신의 사림 아홉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웹사이트 -

 

 

 

솟을대문에는 '광산 이씨 효열문'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호암서원 안내문.

 

 

서원의 주벽 이중호는 기축옥사로 죽임을 당한 이발(1544~1589)의 아버지. 조선 선비 1천 명이 학살을 당한 전대미문의 대사화가 일어나면서 가장 큰 화를 당한 곳은 정여립(1546∼1589)의 근거지가 되었던 호남지역. 사건의 장본인인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서 자결함으로써,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되었으나, 문제는 살아남은 자였다. 특히 정여립의 후원자였던 이발이 그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면서 광산이씨 가문은 풍비박산이 난다. 이발의 노모와 어린 아이들까지 강물에 던져지는 참화를 당한다.

 

호남 선비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는 이 대형 옥사의 행동대장은 정철(물론 기획자는 선조였겠지만). 그 한이 오죽 컸으면 지금도 광산이씨와 연일정씨는 혼사는 물론이고 한자리에 앉지도 않는단다. 힘겹게 살아남은 광산이씨들이 모여 사는 곳답게 지금도 고기를 다질 때 '정철, 정철'이란 저주의 주문을 외울 정도로 깊은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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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솟을대문) 뒤로 호암서원 강당인 모선당과 그 뒤로 내삼문(경의문)이 보인다.

 

 

호암서원 강당 모선당과 그 뒤로 내삼문 경의문. 그리고 호암서원 묘정비가 보인다.

 

 

강당 모선당.

 

 

호암서원 묘정비와 내삼문 경의문(敬義門).

 

 

호암서원 묘정비.

 

 

호암서원 뒤편으로 광산이씨 선영이 자리하고 있다.

 

 

광산이씨 나주파 안산문중 선조합동제단.

 

 

 

 

 

2018.06.24.